다양한 교리비교 기획을 제공해온 본지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새로운 연재기획 ‘목사님 성경이 궁금해요’를 선보입니다. 본 기획은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교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기획에 선정된 질문들은 그간 독자들이 본지 종교부 기자에게 보내온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각 교단에 공문을 발송해 협조를 구했으며, 성도들의 질문에 답한 목회자들의 답을 게재했습니다.

 

 

Q30. 추수되어 가는 자와 추수되어 가지 못하는 자 중 누가 알곡이며, 누가 가라지인가? 누가 이단이고 누가 정통인가? 추수할 밭은 어디인가?

[전 예장합동 이근호 목사]

추수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벌어진 일에서 그 대표적 사례가 나온다. 즉 사마리아 여인이 물 길으러 왔다가 예수님이 오실 메시아인 것을 알게 된 경우를 말한다. 신약에서 ‘추수 때’를 언급한 것은 ‘이미’ 심판이 개시되었음을 말씀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 알곡 생산 주체자는 오로지 예수님이라는 점이다. 비록 12제자가 추수 작업에 참여하지만 그들의 고유 능력이 아니라 모두 예수님에게 나온 능력에 의해서만 그들이 추수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알곡 생산 자체가 이미 심판이 곳곳에 실시되고 있다는 징후가 된다는 점이 중요한 점이다.

알곡을 가라지와 비교해서 예수님이 언급하신 것은 알곡이 스스로를 알곡이라고 지칭할 수 없고 가라지가 자진해서 “나는 가라지입니다”고 최종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을 밝혀주기 위해서이다. 즉 알곡과 가라지의 구분은 제3의 인물, 심판자의 손길이 개입되는 경우에 의해 결과적으로 밝혀질 상황이다. 어느 누구도 알곡과 가라지 중에 임의로 골라잡을 자격이나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심판(분류작업)은 모든 인간의 기대와 호응과 부응을 배제하고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만이 아시는 기준에 의해서 실시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요 1:18). 따라서 어느 누구도 하늘의 기준을 알 자도 없다. 모든 인간은 땅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요 3:31~32)’

심판은 하나님 쪽의 일방적 조치다. 누가 알곡 되었다고 해서 가라지가 그 자를 향하여 비난하고 불평할 수 없고, 누가 자신이 알곡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노력이 알곡 됨에 보탬이 되었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알곡과 가라지는 사전에 철저하게 봉쇄되어 있고 오직 나타남으로 인하여 비로소 밝혀질 사항이다. 이 밝혀짐은 새로운 개념을 동반케 하는데 그 개념이 기존의 인간 세상에서 통용되는 그 개념과 정반대라는 점에서 사람들을 기이하게 여기게 만든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이 대목에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와 ‘어린 아이’라는 개념이 서로 대비되면서 인간 세상에서 통용되는 지혜자와 슬기자가 구원에서 탈락됨을 암시한다. 그리고 ‘어린 아이’란 세상 어느 구석에 사전에 특별이 자리 잡고 있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활동에 의해서 새로이 생겨난 자를 ‘어린 아이’라고 새롭게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라도 자기 자신을 향하여 ‘내가 구원받은 어린 아이다’고 해서는 아니 된다. 도리어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예수님이 계시를 주셔야 구원받은 어린 아이가 된다”고 말이다.

즉 ‘나’에서 ‘어린 아이’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경유해야 해야 하는데, 예수님을 경유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 ‘나는 〜 이다’는 논리 형식은 용납되지를 못하고 탈락된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로다(롬 14:8)’

알곡이나 가라지도 이와 같은 취지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추수 작업이 이미 개시되었음을 통보하고자 예수님께서는 결과적으로 모든 인류를 알곡과 가라지로 분류 지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인간이 심판 작업에 사전에 영향을 줄 요량으로 개입할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누가 알곡이냐?’ 혹은 ‘누가 가라지냐’ 이 질문들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어떤 식으로 알곡을 만들어 내시는가?’ 혹은 ‘예수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가라지를 만들어내시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로마서 9장 21~23절에 나온다.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모든 인간들이 순종치 아니했기에 은혜를 주고 아니 주고는 예수님의 고유 권한이다. 심판이란 인간이 어떤 운명이 되느냐에 주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 이런 판결을 누가 내리시는가’가 주안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요 5:22~23)’

따라서 이 예수님만이 심판주 되심과 그분의 일방적 조치에 의해서 구원되심에 공감하고 동의하고 환영하고 찬송하는 자만이 알곡이다. 이런 자만이 천국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0~11)’

이로서 특정 교단이나 특정 집단이나 특정 교회를 알곡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교단이나 집단이나 교회 자체를 구원과 심판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기에 그것이 곧 가라지 현상이 집결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핍박받는다는 것을 근거로 알곡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알곡의 근거나 가라지의 근거는 공히 오직 주되심이 언약을 완수하신 분의 고유 권한에 주어져 있다.

[한국기독교침례회 조예식 목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롭게 하였기 때문이다(롬 8:2, kjv)’ 먼저 추수(秋收)는 거둔다는 의미이다. 추수할 자가 자신의 밭에 자기가 원하는 열매를 바라보고 밭을 갈고 씨를 뿌려 거두는 것을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이 뿌린 씨들이 환란을 통과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안에 성령의 법을 맡겼다. 이것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가 성취되게 하심이니라(롬 8:4)’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하갈을 아브라함의 밭에 씨받이로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으로 뿌리지 않았다. 고로 뿌리지 않는 이스마엘의 후손은 마지막 때에 거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씨를 이어 받은 이삭의 후손은 마지막 때에 거둠을 받을 것이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법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알곡이다. 육신의 의와 율법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있지 않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를 얻어 예수그리스도께 달려 있다. 그렇다. 우리는 복음을 들음으로 주님을 알았다(롬 10:14). 또한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롬 10:17). 하나님은 말씀을 들으라고 한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와서 들으라. 그리하면 네 혼이 살 것이요. 또 내가 영원한 언약을 세울 것이요(사 55:3)’ 또한 ‘주님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주님을 신뢰하리니. 이는 주님께서 주님을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니다(시9:10)’

너무나 단순한 말씀들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왜 그렇게 신앙을 복잡하게 만들어 가는지 알 수 가 없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천국에 갈 것인데 말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몇 개나 써야 천국을 갈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신앙의 시스템, 저주이다. ‘그러나 성경기록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다고 단정하였으나,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하여 약속이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게 하려하심이라(갈 3:22)’

우리의 믿음을 가지고 천국을 갈 수 없다. 시시때때로 변덕을 떨고 있는 믿음, 그리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성경을 보는 눈, 목사마다 교파마다 모두 다르게 보고 있는 성경말씀, 인간의 욕망 때문에 그렇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남보다 더 영안이 열려 있다는 탁월함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것을 아시고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하여 약속’을 받은 자들을 알곡으로 본다.

사람의 믿음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 년 동안 변덕을 부렸다. 개와 같은 이방인의 믿음을 기대하지 않는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바라보라고 한다. 장대에 높이 달린 놋 뱀을 바라보라고 하듯이 말이다. 내 믿음으로 천국가기를 원하는 자들, 주님께서 보실 나와 상관없는 자, 곧 이단이라고 말하며 가라지라고 단정하며 마지막 때에 불사를 것이다.

[SOSTV 생애의 빛]

성경에는 분명히 예수께서 말씀하신 추수사업에 대한 비유가 있다. 세상 마지막 때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실 것이라는 엄숙한 예언이다. 그 말씀을 한번 살펴보자.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있는 자들은 들으라(마 13:36~43)’

여기 예수께서는 마지막 추수사업을 위해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천사들은 누구인가? 계시록 14장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첫째 천사, 바벨론의 포도주를 경고하는 둘째 천사,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셋째 천사). 계시록의 이 세 천사가 바로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께서 세상 마지막 날에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추수천사들이다. 그렇다면 이 추수천사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자체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마지막 때 추수천사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내는 일이다. 불법이란 무엇인가? 법을 어기고 폐하는 것, 즉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4장 세 천사의 전하는 메시지가 모두 하나님의 계명과 관련이 있다. 영원한 복음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라는 복음, 바벨론의 포도주는 하나님의 계명을 변개시킨 기독교의 비 진리 가르침에 대한 경고, 짐승의 표는 마지막 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하는 강제적이고도 전 세계적인 법령을 거부하라는 메시지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당신의 계명으로 교회 안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신다는 것이 바로 마태복음 13장의 추수 천사에 대한 비유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명으로 당신의 백성을 추수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 속에 하나님의 품성이 담겨 있고 하나님은 당신의 품성을 닮은 사람들만 알곡으로 인치시고 곡간으로 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마태복음 13장에서 하나 주목할 만한 기록이 있다.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아울러 또 하나 거두어 내시는 것이 바로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넘어지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들은 바로 이 추수천사의 사업을 모방하는 사탄이 만든 가짜 추수천사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계명으로 알곡과 가라지가 나누어진다는 마지막 추수사업의 진리를 방해하고 오직 자신들의 교회, 자신들의 보혜사, 자신들의 가르침 속에 있어야만 구원이라 주장하며 어떤 거짓말과 위장도 서슴지 않는 자들이 바로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라 예수께서 예언하신 것이다.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추수에 대한 질의는 지난 17번째 문항에서도 답한 바 있다. 그때 추수에 관한 성경의 기록(마 9:37; 13:30; 막 4:27; 요 4:35; 계 14:15, 16)을 살피며 이는 구속사적 교훈을 위한 비유이지 실제 성도가 이 세상에서 추수가 된다는 뜻에서 주신 교훈이 아님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본 질의 역시 올바른 물음은 아니다.

‘누가 알곡이며, 누가 가라지인가?’라는 질의는 마태복음 13장 24절부터 30절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한 물음인 듯싶다. 특히 이 비유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자세히 재해석을 해 주셨다. 그 내용을 마태는 13장 37-40절까지에서 이렇게 기록해주고 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주님께서 해석해 주신 말씀에서 보면 곡식과 가라지는 사람들의 행위와 관련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왜냐하면 주님은 곡식과 가라지란 결과적 산물에 대해 그 씨를 심은 원인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셨기 때문이다.

천국의 아들들에 해당하는 좋은 씨를 뿌린 이는 인자라고 하셨다. 반대로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을 가리킨 비유로써 마귀에 의해 뿌려진 것이라고 하셨다. 즉 누가 믿지 않았거나 잘못 믿었기에 가라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고 순종하였기에 알곡이 되었다는 식의 말씀도 아니다. 가라지와 알곡은 사람의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누구에 의해 심겨진 것이냐는 원인론에 그 결정적 이유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 백성들의 출생과 관련하여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3)’고 말씀하신 바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혈통이나 육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시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결정됨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진리는 만인구원설적 개념이나, 구원을 인간의 행위의 결과로 돌리는 이론으로는 절대 그 뜻에 접근할 수 없다. 오직 ‘예정론’, 곧 창세전 선택의 진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만이 해석이 가능한 말씀들이다.

따라서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말씀에 대비(對比)하여 ‘누가 이단이고 누가 정통인가?’라고 묻는 물음은 역시 합당하지 않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이단과 정통을 가리고자 주신 교훈이 아니다. 하나님 백성과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자들의 출생 근원을 밝히고자 주신 교훈이기 때문이다.

또 주님은, 추수할 밭을 세상으로(마 13:38), 추수할 때는 세상 끝(마 13:39)으로, 추수에 대해서는 곡식은 곡간에(마 13:30), 가라지는 불에 사르는 것(마 13:30, 40)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추수는 주님 재림 시에 있게 될 최후 심판을 가리킨 비유이다. 따라서 현재 성도들이 추수가 되거나 안 된다는 식의 이런 질문은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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