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교리비교 기획을 제공해온 본지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새로운 연재기획 ‘목사님 성경이 궁금해요’를 선보입니다. 본 기획은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교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기획에 선정된 질문들은 그간 독자들이 본지 종교부 기자에게 보내온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각 교단에 공문을 발송해 협조를 구했으며, 성도들의 질문에 답한 목회자들의 답을 게재했습니다.

 

 

Q29.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오늘날의 목자들은 초림 때같이 핍박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성도들을 예수께 보내겠는가? 또 이단이라 하겠는가?

[전 예장합동 이근호 목사]

위 질문에서 ‘목자’란 소위 ‘목사’나 신부’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하겠다. 하지만 위 질문이 성립되려면 찬찬히 조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처음 오실 때는 오늘날의 목사나 신부는 아예 생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목자’란 유대교(종교) 지도자를 말하고 ‘양’들이란 유대교 신자, 혹은 유대나라 백성을 두고 말한다. 따라서 위의 질문을 유효하게 성립하려면 예수님이 다시 오셨다는 요건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국가헌법이 구약 율법적인 형식으로 조성된 종교적 국가, 내지는 종교적 사회이어야 한다.

이런 체제 안에서만 예수님을 대면할 ‘양-목자’이라는 권력관계가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오늘날의 교회나 교계가 율법 체제나 혹은 형식적 법적 체제 보다 더 근원적으로 돈과 자본 형상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한다면 ‘양-목자’의 관계가 아니라 투자자와 전문 경영인의 관계가 성립된다.

여기서 교회 투자자란 헌금을 정기적으로 내는 교인들이요, 전문 경영인이란 교회를 교인들의 종교적 욕구를 실적으로 내놓은 교회 사업체를 운영하는 자들이다. 교인들의 종교적 욕구란, 신이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지를 기적과 기적의 연결고리로서 목격하고 체험하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곧 자신들의 교회가 이 땅에서 세력을 키우는 실적을 보고 싶어 하는 욕구하다.

교회 전문 경영인, 곧 목사나 신부는 그들의 욕망과 욕구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예수 이름을 팔아서 각종 신기하고 놀라운 사회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가는 이벤트를 개발하는 자들이다.

자, 이런 교회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그들에게 책망받기 이전에 먼저 그들을 책망하시게 된다. 이는 과거 예수님의 초림 때에 실제로 성경에서 예수님의 핍박받은 것은 예수님 쪽에서 먼저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들을 비난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이 사형 당하신 것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사수하려고 한 그곳ㄹ을 공격했기 때문인데 그곳은 바로 신과 교신이 유일하게 가능하고 믿고 있었던 (이곳은 기도하는 집이다) 그 성전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역시 오늘날 교인들이나 목회자들, 교계들이 신과 수시로 교신과 교류가 가능한 그 무엇에 대한 공격적 언사나 발언을 쏟아내실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비(非)-복음적 종교성이 집결한 그 무엇이다. 곧 ‘지성이면 감천이다’는 사고방식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무속신앙적 바탕 위에서 오고가는 돈과 신에 대한 아부성 물질이 쌓여 있는 것, 바로 그곳을 예수님께서 피 묻은 손을 내밀면서 고발하신다.

교인들의 축복에 대한 희구와 바람은 고객이 만족해야 장사가 된다는 사업정신에 입각해서 목회자들도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보답하게 되어 있다. ‘성의나 정성을 드린 만큼 복을 받습니다’는 상호 인정하는 협약에 의해서 교인들은 세상 성공을 고대하면서 예배당에 엎드린다. 돈이 없는 자는 기도나 교회 봉사로서 미진한 부분을 채워서 놀라운 기적을 맛보려 한다.

하지만 마태복음 16장 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세상이 나에게서 기적이 나타나기를 원하나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요나의 기적이다’고 말이다. 즉 십자가 죽음, 이것이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인간들이 살고 있는지를 최종적으로 밝히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적인 축복 기대성은 자기 의(義) 추구’라는 보다 깊이 있는 죄악의 현상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즉 비록 기복신앙을 정죄하고, 한국교회의 세속화를 비난하고 스스로 이웃을 사랑하며 겸손하고 봉사하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희생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과 경건의 삶을 산다할지라도 말씀 앞에서는 그것마저 자기 의로 교묘히 위장되는 육신의 고유한 위선의 힘은 어느 인간도 벗어날 수 없음이 탄로 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 어떤 인간도 행함으로 의인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영이신 성령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의 책망은 오직 십자가 흘리신 사건에 근거해서 예수님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면서 책망하게 된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

모든 인간은 예수님 앞에서 누구나 죄인 중의 괴수다. 따라서 십자가 피 앞에서 자신이 죄인됨을 인정하는 자만이 성도다. 그 외는 예수님의 눈에 다 이단이다. 성도는 자신이 이단 아님을 내세우는 자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한다. 기준은 오직 십자가 피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한국기독교침례회 조예식 목사]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나, 하나님의 씨가 자신 안에 있는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님의 씨가 없으면서 자신 안에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말씀을 선포하거나 신앙 생활하는 자는 주님 오시는 날, 안에 하나님의 씨를 자신 안에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함이요, 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라(요일3:9 kjv)’

죄를 짓는 것은 도덕 윤리적 차원에서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나약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자범죄와 원죄가 처리 되었다고 생각한다. 죄를 지으면 눈물 몇 방울 떨어뜨리며 회개하는 것으로 끝난 줄 안다. 주님은 이런 사소한 일로 자신의 자녀들을 훈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하늘나라의 주인 역할을 하는 것을 씻을 수 없는 죄로 볼 것이다. 목자라고 떠들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주님 오실 날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에 자신을 높이는 자로서, 그가 하나님같이 자신을 보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전 2:4)’

하나님의 성전에 앉은 자를 교황으로 몇몇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있는 자들이 교황으로 핑계 삼고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성도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들의 마음에 앉아 영화를 누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핍박이라는 선물을 주실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예 그들은 핍박을 받을 자격도 없으니까 말이다.

목자로 아니면 그리스도인으로 땅위의 영광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누리는 자들은 핍박은커녕 주님 오시는 것도 그들에게 비밀이 될 것이다. 누가 성도들을 예수께 보낸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목사가 성도를 오실 신랑 되신 예수께 보내는 것인가.

하여튼 성도들을 예수께 보내는 자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만약 인간이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도를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단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고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밝히 드러낼 때가 올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들이 밝히 드러나나니, 누구든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니라(요 3:10)’

성전 밖 즉 불신자들의 심판과 핍박이 아니라 성전 안의 성도라 불리우는 자들에게 임할 일들이다. 땅 위의 영광을 쫒아 다니는 신앙,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을 상담하는 자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복을 논하는 자들, 인간 목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날 리가 난다는 위선자의 언행, 모두 핍박의 대상도 아니며, 이단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관계없는 이세벨의 영들이기 때문이다.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모세가 광야에서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고통과 죽음에서 구원함을 받았던 사건이 있었다(민 21:9).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놋 뱀이 어느 시대나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고 그것을 히스기야 시대까지 보존하며 거기에 분향하는 우(愚)를 범했다(왕하 18:4).

이와 같이 오늘날도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본문의 역사성에 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무조건 오늘이란 현실에 직선으로 적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 질문도 그런 경우가 아닌지 의심이 가기에 해보는 염려이다.

왜 오늘날의 목자들도 초림 때와 같이 주님을 핍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근거를 전혀 밝히지 않은 채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그 시대 예수님을 핍박한 사람들의 경우와 같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진다. 그 시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핍박했던 것이 이처럼 이유도 근거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한 원인에서 비롯된 결과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질문이 성립 자체가 안 되는 것은 초림 때와 같이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다시 오실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성경은 심판의 주로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계 19:11-16). 그러므로 가정(假定)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치 않고 핍박한 문제에 대하여 4가지로 답한 바 있었다. 첫째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유일신으로 알고 있었던 이유를 지적하였다. 하나님은 유일신인데 예수님이 스스로를 일컬어 하나님과 동등(요 10:30)이라 하니 격분하였던 것이다.

둘째는, 예수님이 메시아란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란 근거를 제시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사렛 태생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셋째, 근원적으로는 하나님 백성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성경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고전 12:3)’고 하였다. 따라서 원인론적으로는 그들에게 성령의 내주하심이 없었음이 명백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하나님 백성들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육신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왜곡된 신앙사상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근거로 그 시대 유대인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육신적인 이스라엘을 구원해줄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해하였음을 지적하였다.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그러하니 예수님은 그들에게 있어 메시아일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메시아라면 자신들을 위해 로마와 대항하여 민족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가장 위대한 나라로 세워주어야만 하는데 예수님은 그리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4가지 이유 전체를 한마디로 규정하면 성경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이 없었기에 벌어진 사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정(假定)하여 오늘 우리시대의 사람들도 성경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그 시대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은 명백하다. 특히 성경을 육신의 문제로 끌어다가 해석하는 경우가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렇게 지적한 바가 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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