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기획]로마가톨릭의 구습에 항의해 분리해 나간 ‘개신교’
[종교기획]로마가톨릭의 구습에 항의해 분리해 나간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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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탄생의 배경 ‘종교개혁’… 교회사뿐 아니라 세계사도 변화시키는 계기

개신교(改新敎, Protestantism) 또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가톨릭(천주교)에서 분리해 나간 여러 기독교 종파를 두루 일컫는 말로 구습에 항의한다는 뜻의 프로테스탄트 또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우리말로 옮긴 말이다.

그렇지만 로마가톨릭과는 한 뿌리라는 것과 믿는 대상이 같다는 것에서 기독교의 범주 안에 속하며, 이 기독교라는 표현 안에는 천주교회를 비롯해 성공회, 동방 정교회, 콥트교회, 에티오피아 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개혁교회 등의 예수를 그리스도 즉, 구세주를 믿는 모든 종파가 포함된다.

한편, 오늘날 개신교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는 종파의 수는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꾸준히 늘고 있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개신교의 탄생

세계전쟁의 발단은 대부분 종교 간의 갈등과 분쟁에서 초래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전쟁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종교의 역사를 빼놓지 않는다. 개신교의 탄생 또한 종교 간 갈등과 분쟁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개신교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도 갈등의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로마가톨릭에서 개신교가 갈라져 나오기 훨씬 전인 11세기 동·서방교회로 나뉘어져 있었을 때 ‘성화상 논쟁’이 있었고, 개신교가 등장할 당시인 16세기에는 ‘전통과 믿음’이 논쟁의 대상이 됐다.

우선 당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교회가 있고, 모든 신앙 행위는 교회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입장을 고수한 개혁자들은 교회의 중간자적인 역할이 없이도 하나님과 인간이 직통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리고 그 논리는 ‘오직 성서로’ ‘오직 믿음으로’라는 짧은 표어로 개념화시켰다.

가톨릭교회는 개혁자들의 이러한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아우그스부르크 종교회의(1555년)에서 교황의 지배를 받지 않는 루터파를 공인하기에 이른다. 이는 개신교의 탄생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개신교의 탄생 배경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종교개혁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 프로테스탄트라 부르는 교파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아비뇽 교황의 대립으로 생긴 분열 결과, 14세기경부터 그 안팎에서 쇠퇴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공의회(公議會) 운동이 활발히 추진되어 피사·콘스탄츠·바젤 등지에서 공의회가 열렸으나,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무위로 끝났다.

본격적인 종교개혁은 M. 루터에 의해서 비롯됐다. 가톨릭의 입장에서 볼 때 루터의 종교개혁은 전통적 교회 밖에서 혁명적 방법으로 새로운 교회를 창설한 것이므로 정상적인 ‘개혁’이라고 볼 수 없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당시 부패하고 타락한 가톨릭교회를 대항해 교회 밖으로 나왔기에 충분히 종교개혁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조그마한 도시 비텐벨그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교회사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파장을 던졌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회의 개혁에 그친 것이 아닌 중세의 가톨릭적인 보편질서를 깨고 유럽 제국으로 하여금 문화·정치·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민족적인 독자성을 갖게 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종교개혁으로 탄생하게 된 개신교는 적어도 출발 당시에는 다음 몇 가지 점에서 가톨릭과는 달랐다.

먼저는 가톨릭의 ‘교회지상주의’를 ‘성경지상주의’로 바꿨다. 가톨릭은 교회와 교황이 가장 높은 권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거기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교회의 전통을 중요시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하고 말씀의 권위를 회복시켰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았거나 말씀에 위배되는 교회의 전통은 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구원관이다. 가톨릭은 당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선한 행위나 공로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것을 더욱 강조했다. 여기서 면죄부가 나왔다. 면죄부를 산 자는 교회에 그만큼 공로를 세웠기 때문에 자기의 부모나 조상들이 연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롬 1:17)’고 한 말씀을 굳게 믿고 이를 주장했으며,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는 은혜라고 확신했다.

마지막으로 만인제사장(萬人祭司長)을 주장한 것이다. 교황과 신부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계급적, 권위주의적인 가톨릭과는 달리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직접’ 간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신교의 주요 교리

종교개혁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개신교 종파로는 루터교를 비롯한 메노나이트, 재세례파, 후터라이트, 아미시파, 장로교(개혁교회) 등이 있다.

근대 영국에서는 영국 성공회의 주교제와 예복사용에 반대하며 성서 이외에 다른 어떤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청교도가 등장했으며, 이들 청교도에게서 조합교회와 침례교회가 갈라져 나왔다. 18세기에는 성공회 사제 존 웨슬리 신부가 직접 민중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감리교가 시작되었고 미국에서는 그리스도의 교회, 연합 그리스도 교회, 오순절교회 등의 교파가 시작됐다. 

종교개혁 당시 개혁자들의 사상을 요약한 표어로서 다음 다섯 가지가 있다. 오늘날 개신교 종파 중엔 다섯 가지 주장을 그대로 계승하는 종파는 물론 그 중 일부만 교리로 채택하는 종파도 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진리냐 아니냐의 유일한 권위는 즉,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은 성서에 있지, 전통과 교도권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로마가톨릭은 이와 달리 교회의 전통을 성서와 함께 중요시한다.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교리이다.

‘오직 은혜(Sola Gratia)’-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참된 생명력을 잃은 절대적인 절망의 상태로 죄의 노예 노릇을 하고 있으며,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만 사후의 심판에서 죄에 대한 대가로 영원한 벌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스스로 죄를 벗어날 능력이 없고, 구원의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완전히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오직 믿음(Sola Fide)’- 하나님이 내리시는 구원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해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선행은 구원에 필요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 받은 결과로 발생하는 열매이다.
‘오직 주님만 영광 받으심(Soli Deo Gloria)’-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일이며, 거기에 인간이 참여하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교리이다.

 

한국 개신교 전래 및 현황

조선의 개신교는 1879년 이응찬(李應贊), 서상륜(徐相崙, 1848년~1926년) 등이 중국 만주에서 세례를 받은 다음 신앙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시작됐다.

조선의 개신교는 신앙 공동체 형성 직후부터 성경 번역에 착수해 1882년 함경도 방언으로 된 ‘예수성교 누가복음젼셔’를 출판했다.

따라서 한국의 개신교 전래는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시작됐다는 특이점을 갖는다.

1885년 4월 5일 장로교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와 미국 북감리교의 아펜젤러 목사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고, 언더우드 선교사는 광혜원을, 아펜젤러 목사는 배재학당(現 연세대학교)을 설립한다. 그밖에 침례교는 캐나다의 맬콤 팬윅에 의해 전래되었으며, 1905년 구세군교회도 구세군 사관 허가두 중령에 의해 들어왔다.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부터 일반인들 사이에서 개신교가 싹트기 시작한 유례없는 이 사건은 훗날 한국의 개신교가 급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개신교가 들어온 지 125년 남짓 되는 지금 한국은 선교사 파송국 2위라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으며,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고 빛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개신교는 사회로부터 많은 비난과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고, 사회적 신뢰도도 떨어져 2008년 기준 26.9%로 천주교 66.6%와 불교 59.8%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도 수 또한 1192만 874명으로 조사됐으나 실제 신도 수는 800여만 명 정도에 그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신도 수는 줄어드는 반면 2008년 조사된 바에 따르면 개신교 교단 현황은 291개로 파악됐다. 여기에 파악되지 않은 교단 수까지 합하면 참으로 많은 교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짧은 기간 동안 비약적 발전과 부흥을 누렸던 한국의 개신교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이미지 쇄신과 함께 분열되고 갈라지는 것이 아닌 화합하고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 1883년 5월 16일,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소래마을)에 세워졌던 소래교회를 복원한 것으로 총신대 양지캠퍼스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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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2009-12-02 14:28:43
종파는 하나님이 나눈 게 아니고 사람이 나눈 것인데..하나님 안에 하나가 되어야죠~개신교에서도 종파가 어떻게 나눠진지도 모르고 누구파인지 따지는 사람들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ㅜ

오마이갓 2009-10-29 14:34:55
가끔..종파마다 하나님이 다른것같다 ㅋㅋㅋ

ka10314 2009-10-11 10:55:33
신앙의 개혁^^

춤출舞 2009-10-02 12:57:21
진리안에서 하나되는 그날을 위해 기도합시다

eastsun12 2009-09-29 11:33:50
배재학당은 지금의 연세대가 아닙니다. 연세대의 전신은 연희전문학교와 제중원입니다. 배재학당이 굳이 어디의 전신이냐 따져본다면 배재중,고 배재대이겠죠.

어쨋든 성경이 신앙하는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새삼 느끼고 갑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