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룡 세금바르게쓰기운동본부 대표

 
1998년으로 기억한다. 서울특별시청 도시계획과에 근무하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이 드신 할아버지가 방문하셨다. 내가 않아 있는 책상으로 오셔서 불편한 일이 있는데 공무원이 꼭 해결해 줬으면 하는 민원을 이야기하신다.

민원의 요지는 이렇다. 1960년대부터 노원구 하계동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이 옛날에는 주거지역이었는데 어느 날 자연녹지지역으로 도시계획 용도지역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건축법상 건폐율이 강화(60%→20%)돼 증개축을 못해 아직 재래식 화장실을 쓰고 있으니 죽기 전에 집을 고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연녹지지역을 일반주거지역으로 풀어 달라는 민원이었다.
나는 잠시 문서를 확인할 동안 차 한 잔 드시면서 기다리시도록 자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빨리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민원지역의 도시계획 연역을 살펴보았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최초 주거지역에서 자연녹지지역으로 용도변경이 강화된 지역이었다.

과거 건설부가 1970년대 결정할 당시 행정에서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서울시 행정처리 수준으로 볼 때 동 지역은 이미 집이 건축돼 있는 지역이므로 건축법상 경과규정을 만들어서 증∙개축에 문제가 없도록 했어야 했다.

이것이 시민의 입장을 배려하는 행정처리다.

그러나 냉정하게 살펴보면 과거 도시계획으로 용도지역을 강화 결정할 때 공무원들이 미리 조치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무사안일의 행정행위로 인해 민원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빨리 가서 민원인 할아버지의 나머지 푸념을 듣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상급자에게 동 민원을 보고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돌려보냈다.

이런 일이 왜 지금까지 조치가 안 되고 남아 있는지를 도시계획과 전입 선배들과 이야기했다. 과거 도시계획 행정의 잘못을 떠나 현재 자연녹지지역을 일반주거지역으로의 해제에 대해서는 큰 특혜를 주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있어 불합리한 부분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업무추진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무척이나 고민됐다. 할아버지가 되돌아갈 때 보여준 눈빛이 쉽게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30대 초반의 젊은 공무원에 대한 기대와 그간 행정에 대한 원망의 눈빛이 한참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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