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왼쪽부터)손경익 NH농협카드 분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이 3사 공동 기자회견에서 사과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일녀 기자] “사원증 좀 봅시다. 이거라도 찍어가야겠소.”

김정원(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63) 씨는 20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카드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보유하고 있던 롯데카드 2개를 해지했다.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만들더라도 지금은 해지해야 불안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상담을 끝낸 김 씨가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자신을 상담한 직원의 사원증을 찍었다. 그는 “카드를 해지하면서 카드번호와 휴대전화 번호를 적었는데 왠지 불안해서 증거로 찍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60대 고객은 자신을 응대해준 직원의 이름을 쪽지에 적어갔다. 그는 직원에게 카드 비밀번호는 유출되지 않았으니 당장 재발급받지 않아도 되는 이상,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면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재발급받아도 문제없다’고 한 직원에게 “믿고 간다”는 말을 거듭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 직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KB국민·롯데·NH농협카드 3사의 고객정보 유출 대란으로 금융의 생명인 신뢰에 큰 타격이 가해졌다. 20일 정보가 유출된 해당 카드사 지점과 은행창구에서는 정보 유출 여부와 카드 재발급 및 해지를 신청하는 고객들로 하루 종일 붐볐다. 저녁 6시경, 늦은 시간임에도 롯데카드센터 안에는 30~40여 명의 고객이 재발급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센터 밖에도 6~7명의 직원이 있었지만 쉴 새 없이 찾아오는 고객들을 응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제 이 시간 상담 창구에서 업무처리를 한 고객은 이날 낮 1시경 대기 번호표를 뽑아간 고객들이었다. 사실상 무작정 기다리는 이들은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부 고객들 사이에서는 대기 시간이 너무 길고, 상담 직원이 부족한 것 아니냐며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객 불편이 가중된 것은 이날 오전 일찍부터 각 카드사의 콜센터와 홈페이지가 고객 문의 및 신청 폭주로 마비됐기 때문이다. 이에 고객들은 더욱 분통을 터뜨렸다. 센터를 찾은 한 고객은 “하루 종일 콜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변경하려고 홈페이지에 접속해도 안 열리기는 마찬가지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롯데카드 측은 이날 상담 대기자가 너무 많아 당장 재발급이 어렵다며, 원하는 고객에 한해 재발급 신청 명단을 따로 받았다. 이후 3일 이내 콜센터를 통해 명단에 있는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해 신청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객들의 불신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모습이었다. 한 고객은 “콜센터 번호도 의심스럽다. 전화에 대고 주민번호, 카드번호 등을 다 얘기해야 신청이 될 텐데, 그 번호가 맞는지 어떻게 믿고 얘기할 수 있겠느냐”며 답답해 했다. 또 재발급 신청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적기 전 “꼭 필요한 정보가 맞느냐”고 재차 묻는 고객도 많았다.

특히 재발급 신청을 통해 카드를 수령하기까지 1주일이 넘게 걸리는 만큼, 그 사이 유출된 정보가 악용될 수 있다는 불안에 일단 정지하고 싶다는 고객도 적지 않았다. 정모(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45) 씨는 “며칠 전 롯데 가족카드를 만들어 사용한 적이 있는데 이번 사태로 불안해서 바로 정지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정보가 유출된 3사의 카드는 모두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편 국민·롯데·농협카드 홈페이지에서의 개인정보 유출 조회건수는 20일 오후 4시까지 520만 건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카드는 이날 4시까지 224만 8천여 건, 롯데카드와 NH농협카드는 이날 3시까지 각각 160만여 건, 135만여 건을 기록했다.

이들 카드사의 재발급 신청건수는 이날 3시 기준으로 농협카드 10만 8616건, 롯데카드 3만 6천 건을 기록했다. KB국민카드는 이날 정오 기준 3만 4천 건의 카드 재발급 요청을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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