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 화요일 밤은 승냥이의 모습에 설렌다. 하지만 이 설렘은 극중에 몰입했을 그때까지다. ‘역사 왜곡’이란 꼬리표를 지울 수 없기에 보는 이들의 마음은 편하지만은 않다. 꾸준히 역사 왜곡 논란이 일고 있는 팩션 사극을 50부작 드라마 ‘기황후’를 중심으로 짚어본다.

 

▲ 기황후 포스터 (자료제공: MBC)

MBC 드라마 ‘기황후’는 첫 방송이 되기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특히 실력파 여배우 하지원이 기황후 역을 맡는다는 소식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배우의 연기에 진실이 묻히면 어떡하느냐’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이에 제작진은 “픽션(허구)이 가미된 팩션(사실+허구)의 성격이 짙다”며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로 봐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인기 배우들이 등장하니 청소년들도 시청하고, 이로 인해 잘못된 역사관이 심어질 수 있다며 드라마를 보지 않겠다는 이들이 생겨났다.

제작진의 의도는 기록이 많지 않은 역사 인물에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해 그야말로 ‘드라마’를 만드는 데 있다. 일례로 지난 2003년에 방영된 ‘대장금’이 있다. 이 드라마는 조선왕조실록에 10군데 정도 나와 있는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이때만 하더라도 역사 왜곡의 논란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한류 문화 콘텐츠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분위기가 대다수였다.

이후 ‘성균관 스캔들’을 비롯해 ‘장옥정, 사랑에 살다’ ‘제왕의 딸, 수백향’ 등 다양한 픽션 사극이 등장했다. 그야말로 픽션 사극의 명암이 갈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논란의 절정에 선 드라마가 바로 ‘기황후’다.

◆“기황후이기 때문에…”

기황후를 둘러싼 역사적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고려 출신으로 원나라의 황후 자리까지 오른 그가 과연 애국자인지 매국노인지에 대한 답이 아직 내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인으로서 원의 황후 자리까지 오른 면은 진취적으로 높이 사겠으나 이후 야욕에 휩싸여 도리어 고려를 공격했던 악행 역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드라마 ‘기황후’는 역사적 논쟁이 아닌 고려 출신의 여인이 황후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기황후가 고려 여인이라는 기본 설정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사실(事實)과 허구로 된 팩션임에도 역사 왜곡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는 사실(史實)과 다른 등장인물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기황후는 낯선 이국의 황실에서 자신의 조국을 잊지 않으며 고려의 자긍심을 지키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고려사절요’에는 “기황후와 기철 4형제는 갖은 횡포를 일삼고 경쟁적으로 악행을 벌였다”며 기황후의 악랄함을 드러냈다. 기황후와 기철(?~1356)은 남매로 기자오(1266~1328)의 자녀들이다.

막내 여동생이 원나라의 황후가 되자 기철은 대표적 친원파가 돼 동생만 믿고 권세를 휘둘렀다. ‘과연 기황후의 악랄함을 어떻게 드라마로 표현할 것인가.’ 상상력과 사실(史實)의 간격은 여기서부터 벌어진 셈이다.

기승냥이 연심을 품는 가공인물 왕유(주진모)를 보자. 원래대로라면 고려의 28대 왕, 충혜가 등장해야 했다. 기록에 따르면 충혜왕은 주색에 빠져 계모와 신하의 부인을 겁탈하고,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철퇴로 죽이는 등 악행이란 악행은 다 일삼는 폭군이었다. 하지만 배우 주진모가 연기할 충혜왕은 현명하고 나랏일을 걱정하는 남자 주인공이다. 기승냥이 연심을 품을 만한 인품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촬영 전에 논란거리가 됐고 제작진은 충혜왕을 가상인물 왕유로 수정했다. 그리고 첫 화에 ‘실제 역사와 다르다’란 내용의 공지를 자막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자막만으로 다소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들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제작진의 입장과 달리 “팩션이라도 역사의 근본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드라마 ‘기황후’가 높은 관심을 받고 있기에 더욱이 사실에 근거해야 옳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시청자에게 혼란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대다수 역사학자와 전문가는 “연구되지 않은 부분을 미디어에서 소개하는 것은 시청자 또는 국민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부분으로 이는 긍정적”이라면서 “하지만 사료에 있는 것과 다른 묘사는 시청자들이 그대로 인식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제작진이 자막으로라도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문종 황제의 황태후(김서형 분). 연철(전국환 분)과 반(反)하는 인물로 타환(지창욱 분)을 황제의 자리에 앉힌다(왼쪽). 백안(김영호 분)은 몽골의 부활을 위해 연철(전국환 분)에게 충성하지만, 사리사욕만을 채우는 연철에게 돌아서고 고려 왕과 손을 잡는다. (자료제공: MBC)

◆다른 팩션 사극은?

종영된 SBS 월화 사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 역시 역사 왜곡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장옥정이 패션디자이너라는 설정부터 하이힐, 푸른 곤룡포 등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기황후와는 다른 시각에서 역사 왜곡 드라마라는 인식이 많았다.

기황후와 달리 장희빈(장옥정)에 관한 기록은 많다. 다시 말해 많은 사실(史實)이 있는 상황에서 상상한 것을 억지로 끼워 맞췄다는 이야기다. ‘기황후’는 사실이 적어 나머지 부분에 허구성을 가미했다.

MBC에서 방영하는 사극 ‘제왕의 딸, 수백향’ 역시 꾸며진 이야기가 사실보다 많다. 드라마는 일본의 계체왕의 정실부인이자 백제 공주인 수백향 이야기를 다뤘다. 하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수백향이 백제의 공주라는 기록이 없다. 역사학자 문정창(1899∼1980)이 집필한 ‘일본상고사’에서 수백향이 백제의 공주일 것이라는 가설이 있을 뿐이다.

팩션 사극에는 사실과 허구의 비율을 각각 어느 정도로 정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작가의 상상력을 얼마만큼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역시 없다. 하지만 팩션 사극이 계속 나오는 한 역사 왜곡의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하면 논란을 잠재우고 유익하고도 재밌는 사극을 접할 수 있을까. 제작진과 전문가, 시청자들이 대안을 모색해봐야 할 때다.

박혜옥 기자 ok1004@newscj.com

▲ 기황후
기황후(?~?)

기황후는 고려 출신으로 원나라 조정에 공녀로 보내졌다(기자오의 막내딸이다).

그리고 혜종의 총애를 입으면서 황후로서 입지를 다진다. 이후 원나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원나라에서 고려 풍속을 크게 유행시키는 데 기여한 업적이 있다. 하지만 기황후는 고려를 공격했다.

오빠 기철이 권력을 휘두르다가 1356년 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책으로 죽임을 당하자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원나라에 있던 충숙왕의 아우 덕흥군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1364년 고려 출신인 신유에게 고려를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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