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참으로 무지한 권력의 오만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일 년 내내 정쟁으로 소일하던 정치권이 이제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말이 한국사 교과서 논란이지 실상은 오만한 권력의 무한 질주요, 권력으로 지난 역사까지 바꿀 수 있다는 무모한 탐욕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일부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 그들에게 곡학아세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가세하면서 지금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난타당하고 있다. 권력을 얻었으니 그 권력의 입맛에 맞게 그들의 또는 그들의 뿌리가 되는 근현대사도 바꿔보겠다는 발상이다.

정치권력이 한국사 교과서까지

한마디로 수준 이하의 내용이다. 역사를 보는 관점이나 그 해석, 이를 둘러싼 역사인식의 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한 것이 적지 않다. 심지어 교과서에 들어가는 사진조차 엉터리로 드러난 것도 있다. 이쯤 되면 교과서가 아니라 참고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이 책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라는 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여당이 계속 이 교과서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학사가 펴낸 한국사 교과서는 일제 강점기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군사독재 정권을 미화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교사와 학생들, 학부모들에 의해 사실상 퇴출된 책이다.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전국적으로 한두 군데에 불과할 정도로 사실상 채택률 0%에 가깝다. 정부 당국은 전교조 등 외부세력의 압력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전인수격으로 볼 일이 아니다. 그 외부세력이란 전교조를 뛰어 넘는 국민이요, 결국 국민적 여론 때문에 학교마다 저항과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우리 국민의 건강한 상식과 양심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집권세력이 밀어붙였던 한국사 교과서가 사실상 퇴출되자 이번에는 더 강경한 칼을 빼들었다. 아예 과거 유신시대처럼 ‘국정교과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 정우택 최고위원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권력만 잡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이 오만하고 방자한 발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근현대의 역사까지 바꾸겠다는 생각도 수준 이하지만, 그렇게 해서 만든 교과서가 사실상 퇴출되었다면 먼저 반성하고 사과할 일이 아닌가. 그래도 국민의 대표요, 집권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라면 그 정도의 도리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과와 반성은커녕 아예 국정교과서론을 펴면서 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팔자에도 없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매달리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읽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을 향해 무한 충성하는 이런 태도야말로 정치실종의 근본 원인이요, 국론분열과 무한정쟁의 바탕에 다름 아니다. 세계 어디에 대통령의 의중을 살펴서 집권당이 국사 교과서 문제까지 손을 내는 나라가 또 있다는 말인가. 앞으로 4년 뒤, 또 정권이 바뀌면 한국사 교과서도 또 바꿀 것인가. 참으로 답답하고 참담한 일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역사학계의 공론화가 일차적인 수순이다. 거기서도 서로 인정하고 확인된 사실과 해석을 중심으로 교과서에 담아내야 한다. 특히 부침이 심하고 잘못 알려진 내용이 많은 우리 근현대사의 경우 더 주의해야 한다. 권력의 욕망이 있다 해서 얼렁뚱땅 만들 일이 아니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그렇게 만만하게 봤다면 정말 오판이며 착각이다. 일본 후쇼사의 왜곡된 역사 교과서에 우리는 분노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교학사 교과서를 놓고 우리끼리 분노하고 있다. 누가 권력의 힘을 빌어 우리의 근현대사마저 농락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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