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설치된 한 도로명 주소 표지판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바뀐 주소 찾기 어려워”… 실효성에 의문 제기
도로명 주소 이용한 신종 보이스피싱 등장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자장면을 배달하는 정성호(가명, 48, 남) 씨는 바뀐 새 주소체계에 애를 먹고 있다. 기존 주소로 주문이 오면 쉽게 배달이 가능하지만 ‘도로명 주소’로 주문이 오면 손님에게 다시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린 뒤 전(前) 주소를 되물어야 한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대형 지도에는 바뀐 주소체계가 적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 씨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도로명 주소를 검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새해부터 ‘도로명 주소’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이를 사용하는 시민들은 정작 ‘도로명 주소’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새해 업무 첫날인 2일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됐다.

정부가 수년간 홍보해왔지만 시행 첫날 곳곳에서 혼선이 빚어졌다. 주소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택배 기사들이 불편을 토로했다. 택배 기사 김모중(30, 남, 서울시 용산구 용문동) 씨는 “이전 주소는 그냥 알아서 찾아가는데 새 도로명은 일일이 검색해서 찾아야 한다”며 “하루에 수백 개를 배달하는 입장에서 다시 주소를 외워야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을 상대하는 택시기사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택시기사 조모(60, 남,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씨는 “새 주소는 내비게이션을 찍어도 나오지 않는다”며 “외국인이나 타지 사람들이 새로 바뀐 주소로 목적지를 말하는데 찾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또 택시기사 김모(57, 남,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씨는 “많은 사람이 바뀐 주소에 대해 인식을 못하고 있다”며 “돈을 많이 들여서 시행했는데 홍보효과가 적게 나타나는 것 같다. 사람들도 익숙한 걸 더 좋아하지 않겠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시민들은 바뀐 주소 체계를 알고는 있으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윤희(32, 여, 울산시 남구 삼산동) 씨는 “고지서가 집으로 와서 바뀐 주소를 알고 있으나 아직은 사용하지 않는다”며 “예전 것이 더 편하고 도로명 주소를 이용해 길을 찾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주환(80, 남,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 옹은 “방금 말한 것도 까먹는데 바뀐 주소를 외우는 것은 어렵다”며 “우리 집 주소는 잘 알지만 다른 집을 찾아갈 때는 어려울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새 주소 체계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착되기까지 적어도 5~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며 “정부가 무조건 시행하는 것은 폭력이다. 국민에게 불편을 줄여준다며 새로운 불편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기존 것을 없애고 새로운 주소만 사용하기는 어렵다. 두 가지 모두 병행하며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도로명 주소를 이용한 신종 보이스피싱이 등장해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3일 서울 성동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와 관공서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도로명주소 변경과 관련해 신종 보이스 피싱 사례를 안내했다.

또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SNS)상에도 ‘도로명 주소를 바꿔야 한다며 본인이 거래하는 해당 계좌 은행 상담원을 빙자한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오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글이 빠르게 확산됐다.

성동구청에 따르면 은행 상담원을 가장한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주소변경건으로 전화한 뒤 안내멘트(ARS)로 연결한다. 이때 주민번호 뒷자리와 계좌 비밀번호를 누르게 해 개인정보를 빼낸다고 성동구청은 설명했다.

하지만 은행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비밀번호나 계좌번호를 묻지 않는다. 계좌에 등록된 주소를 도로명 주소로 바꾸려면 직접 은행을 방문하던지 전화하는 것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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