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촌토성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 ‘백제의 꿈, 왕도 한산’이 한성백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막을 올렸다. 한성백제박물관과 서울대학교박물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전시는 1983년 서울대학교박물관이 몽촌토성을 처음 발굴한 지 30년 만에 개최하는 첫 기획특별전이다. 1. 원통모양 그릇받침, 2. 중국제 동전무늬도기 조각, 3. 말족쇄. (사진제공: 서울시)

출토유물 총망라로 백제왕도 역사 종합복원
어린이·청소년 위한 고고학 발굴체험 실시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오랫동안 백제의 여러 귀족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차에 왕위에 오른 개로왕. 왕실중심의 권력구조를 개편하고 고구려와 맞서 싸운 개로왕은 고구려 첩자 도림에게 속아 국력을 낭비하고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개로왕이 죽기 전 마지막 거쳐가 됐던 남성의 위치가 불분명하던 때에 몽촌토성이 백제 한성의 남성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1997년부터 진행된 풍납토성 발굴과 연계함으로써 현재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각각 백제 한성의 남성과 북성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비운의 역사와 그 속에서 꽃 핀 화려한 문화, 베일에 싸여 더욱 매력적인 백제 한성기를 담은 몽촌토성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 ‘백제의 꿈, 왕도 한산’이 한성백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막을 올렸다.

한성백제박물관과 서울대학교박물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전시는 1983년 서울대학교박물관이 몽촌토성을 처음 발굴한 지 30년 만에 개최하는 첫 기획특별전이다.

몽촌토성은 1981년 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돼 송파구일대 올림픽경기장 부지가 선정되자 정부와 서울시가 서울대박물관에 발굴조사를 의뢰, 1986년을 제외한 1989년까지 매년 1~6개월씩 순차적으로 토성 내부를 발굴조사했다.

몽촌토성은 성벽 길이는 2,285m, 내부 면적 216,000㎡, 동문과 북문 사이 성벽 바깥쪽 작은 능선 위에 둘레 약 270m의 외성이 위치한다.

발굴조사에서는 성안 서남쪽 높은 지대에서 흙을 다져쌓은 판축대지, 적심 기둥을 갖춘 지상건물지, 연못터 등이 발견됐으며 곳곳에 분포한 크고 작은 움집터, 저장구덩이 등이 다수 확인됐다.

출토유물은 동전무늬도기, 뼈로 만든 비늘갑옷, 금동제 허리띠장식, 말 족쇄, 화살촉 다발 등 다양하며 특히 세발토기, 굽다리접시, 원통모양 그릇받침 등 백제의 특징적인 그릇이 나와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당시 예상을 뛰어넘는 고급 백제유물로 몽촌토성이 백제 왕성일 가능성을 열어준 케이스다.

발굴조사 이후 20여 년간 다양한 가설 끝에 최근 몽촌토성이 백제 초기 왕도인 한성의 남성에 비정하는 학설이 역사학계 통설로 자리잡았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몽촌토성 발굴조사에서 백제의 특징적인 그릇 수 천 점이 출토됐는데 대형 육각형주거지와 저장구덩이, 적심건물지, 연못지 등 에서 뼈갑옷, 금동 허리띠장식, 중국청자 등 백제 지배층이 사용한 고급유물이 주를 이뤘다.

당시 몽촌토성 발굴의 현장책임자였던 전남대학교 임영진 교수는 “조사 때 한국고고학계는 3~5세기 백제유물의 특징을 잘 알지 못한 상태였는데 1980년대 몽촌토성과 석촌동고분군을 긴급발굴하게 되므로 백제 한성기 물질문화의 특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전시는 총 3개로 구분돼 몽촌토성의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근초고왕의 꿈이 담긴 백제 왕도 한산(漢山)를 찾아보는 ‘어제’와 1980년대 발굴 성과를 되짚어 보는 ‘오늘’ 그리고 백제 왕도로의 부활을 꿈꾸는 몽촌토성의 ‘내일’ 순으로 구성됐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1980년대 발굴사진을 스캔해 영상화했고 몽촌토성 발굴과 관련된 기록자료를 최초로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겨울방학을 맞은 어린이․청소년에게는 발굴체험과 관련한 체험형 전시로 고고학에 대한 이해를 도울 예정이다. 전시는 내년 2월 16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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