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비빔밥에 대해 1783년의 정조 7년의 <왕조실록>에 보면 “어둡고 어지러워져 그만 허위가 판을 치는 골동반(骨董飯)과 같은 세상이라, 청의(淸議)에 죄를 얻어도 구애(拘碍)될 것이 없고 행신이 비루하고 패리(悖理)해도 버림받지 아니하여, 행검(行檢)이 쓸 데가 없게 되고, 젊은 사람이 노인을 모욕하는 일이 어려울 것 없고 미천한 사람이 존귀(尊貴)한 자를 능멸하는 일이 어려울 것 없게 되어, 따라서 풍속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라고 어지러운 세상을 비빔밥에 비유한 기록이 있다.

근대로 넘어와서도 역시 골동반과 비빔밥이라는 표현이 섞어서 쓰이고 있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골동반이나 비빔밥을 빗대 풍자한 논설들이다.

비빔밥 조리에 대한 최초의 문헌은 지은이가 분명치 않은 조선 말기의 요리책 <시의전서(是議全書)>에 ‘골동반(汨董飯, 부뷤밥)’이라는 이름으로 비빔밥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시의전서에 소개된 골동반은 조리학적 측면으로 볼 때 요리명이 잘못 지어 졌다. 필자가 생각할 땐 옛 중국 문헌인 <자학집요(字學集要)>의 골동반의 이름을 차용한 것 같다. 그러면 자학집요와 시의전서의 조리법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기로 하자.

중국 문헌인 자학집요의 조리법은 “어육 등 여러 가지 것을 미리 쌀 속에 넣어서 찐다”라고 되어 있고, 시의전서에는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쳐 썬다. 각색 남새를 볶아 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 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짝 만큼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리법이 완전히 다르다.

▲ 비빔밥(자료사진)

골동반(汨董飯)은 오늘날의 ‘돌솥밥’과 같다. 시의전서 보다 앞서 출간된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년)>에 보면 “강남(양자강) 사람들은 반유반(盤遊飯)이란 음식을 잘 만든다. 젓, 포, 회, 구운 고기 등을 밥에 넣은 것으로 이것이 곧 밥의 골동(骨董)이다. 예부터 있던 음식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골동반은 중국에서 유래 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비빔밥은 온전히 우리민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맥족(貊族)으로 불리던 민족은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만주에 정착하면서 육식(肉食) 중심의 식생활이 곡․채식 중심으로 바뀌면서 곡물을 이용한 밥, 산과 들에 나는 나물을 이용해 주․부식 형태의 식문화가 형성되었다.

비빔밥은 쌀을 주식으로 삼아온 우리 민족이 오랜 시간을 통해 연금해 낸 밥 문화의 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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