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정치투쟁에서는 공격도 중요하지만 다른 정치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때도 있다. 우리나라의 진보계열 정당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자기의 정적도 세력과 연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AD 1189년, 송효종(宋孝宗)이 태상황으로 물러나고 그의 아들 광종(光宗)이 즉위했다. 광종은 사납고 질투심이 많은 황후 이씨를 두려워했다. 한번은 광종이 손을 씻으려다가 물을 들고 온 궁녀의 손이 하도 아름다워 손을 만지며 기뻐했다. 얼마 후 이황후가 광종에게 음식을 보냈다. 뚜껑을 열어 본 광종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궁녀의 양손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후 광종은 심장질환에 걸려 국정을 돌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국정은 이황후가 처리했다. 태상황 효종이 주의를 주었지만, 황후는 오히려 부자지간을 이간질했다.

이학(理學)을 제창한 송에서 황제의 불효는 커다란 문제였다. 효종이 죽자 광정은 상례도 주재하지 않았다. 재상 조여우(趙汝愚)와 조신 한탁주(韓侂冑)가 부황을 핍박했다는 이유로 광종을 폐하고 조확(趙擴)을 영종(寧宗)으로 옹립했다. 비교적 조용했던 궁궐에 첫 번째 정변이 발생했다. 한탁주가 집권하여 정무를 독단했다. 한탁주는 누대의 권문세가 출신으로 북송의 명신 한기(韓琦)의 5세손이었으며, 그의 질녀는 영종의 황후가 되었다. 황제를 옹립한 공로까지 겸비한 그는 위세와 복을 한꺼번에 차지하고 권세를 떨쳤다. 대권을 장악한 그는 아부를 일삼는 자들과 연합하여 모략으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고 했다. 그는 위학(僞學)을 금지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당파를 심었다. 또한 북방의 금(金)을 공격하여 실지를 회복하면 세상의 인심이 자기에게 쏠릴 것이라 생각했다. AD 1203년 군사적인 준비를 마친 그는 주전파였던 신기질(辛棄疾)과 섭괄(葉适)을 등용했으며, 항금명장이었던 악비(岳飛)를 악왕(鄂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진회(秦檜)를 비롯한 주화파를 단죄했다.

이 무렵 금왕조도 정치적으로 흔들렸다. 장종(章宗)은 아첨꾼 서지국(胥持國)을 중용했다. 서지국은 이원비(李元妃)와 결탁하여 사리를 챙기느라고 분주했다. 관료사회가 급속히 파괴되어 갔지만, 금이 정치적으로 수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약화되지는 않았다. 한탁주는 금의 내정이 흔들리고, 북쪽에서는 몽고족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으므로 실지를 회복할 적기라고 오판했다. AD 1206년 한탁주는 충분한 전쟁준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금을 침공했다. 처음에는 약간의 실지를 회복했지만 금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형세가 갑자기 기울어 송군은 대패했다. 한탁주는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어떤 문인은 그의 실패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백 년 동안 기른 군대와 무기가 하루아침에 흩어졌다. 세상을 뒤덮는 공로도 하루아침에 공염불이 되었으니, 앞으로 백 년 동안 누가 중원인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본래 출병에 반대했던 주화파는 예부시랑 사미원(史彌遠)이 한탁주의 밀모를 깨뜨리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제시하자 모략에는 모략으로 대신한다는 의미에서 출병에 찬성했다. 그들은 한탁주의 권세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들에게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금이 전쟁을 일으킨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자는 요구를 해오자, 사미원 등은 외부의 힘을 이용할 기회를 잡았다. 사미원은 영왕(榮王) 조순(趙詢)에게 주청을 올리도록 권유하고, 양황후를 통해 영종을 설득하여 마침내 밀지를 받아냈다. 한탁주는 대전으로 들어가다가 복병에게 살해당했다. 한탁주에게는 모리배를 제외한 진정한 세력이 없었다. 금의 압력이 강화되자 누구도 그를 변호하지 않았다. 사미원의 무리는 손쉽게 그를 제거하고 수급을 금올 보내 새로운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역사는 사미원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한탁주를 죽이고 17년 동안이나 재상으로 영종을 모셨다. 영종이 붕어하자 제왕(濟王)을 폐했으나 영종의 뜻이 아니었다. 이종(理宗)을 옹립하여 다시 9년 동안 홀로 재상의 자리를 지키며 권력을 휘둘렀지만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의 사후에도 자손들까지 은총이 넘쳤다. 비석을 세워 ‘공충익운(公忠翊運), 정책원훈(政策元勛)’이라는 제호를 머리글로 새겼다. 무려 26년 동안이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사미원이야말로 대단한 능력의 사나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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