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실각한 것으로 국정원이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3일 알려졌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장성택(66)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중앙당 행정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권력의 실세로 떠올랐던 인물 중 하나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부위원장은 김정은 후계구축과 함께 권력의 중심에 섰다. 후계구축이 본격화되면서 그는 김정은의 현지지도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황금평 개발 책임자로 착공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남한에선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그가 ‘권력의 2인자’인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1946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장성택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 모스크바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대학생 때 그는 김경희와 사랑에 빠졌고, 군 출신 사위를 원했던 김일성 주석은 장성택을 원산경제대학으로 강제 전학시켰다. 그러나 김경희가 끝까지 고집을 부려 이 커플은 1972년 결혼을 하게 된다. 매주 주말 김경희가 장성택이 있는 곳을 방문해 빨래까지 해 줄 정도로 그에게 푹 빠져 지냈다는 후문이다.

장성택은 김경희와 결혼한 후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로 2004년 실각을 당한다. 김정일의 지시로 추진됐던 ‘평양시 현대화 사업’과 관련해 장성택의 최측근인 신일남 수도 건설위원장이 박봉주 총리의 자재조달 지시를 거부한 것이 원인이 됐다.

이후 2년간 모습을 감췄던 장성택은 2006년 화려하게 복귀했다.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등의 요직을 차지했다. 복귀에 성공하면서 그는 다방면에서 다양한 활동을 보였고, 경제 분야에서의 행보가 두드러졌다.

그는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만큼 경제부문 활동에서 지속성을 보이고 있고, 대중국 외교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장성택은 사리분별이 빠르고 냉철한 성격으로 파악되고 있다. 황장엽 전 비서는 그에 대해 “6군단 반란 사건 주모자를 처형할 때 군단 정치위원 등 핵심 주동자들에 대해선 그가 직접 권총을 당겼다. 치밀하고 냉철한 인물”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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