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이생진(1929~  )

해마다 연초에 하던 소리
이것만은
이것만은 하고 다짐하던 소리
그 소리가 헛소리로
삼십 년이 지났네
작년에도 하루 한 장씩 읽겠다던
괴테의 ‘시와 진실’ 872쪽
겨우 63쪽 읽고 말았으니
이젠 작심을 말아야지
그래도 64쪽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얇은 책장을 넘기며 빙긋이 웃네
 

[시평]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첫날 많은 사람들은 서원과 함께 새로운 결심을 마음에 한번쯤은 다지곤 한다. 담배를 끊어보겠다는 결심 등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러나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이러저러한 이유로 처음의 그 결심을 그만 무너뜨리고 만다. 일컫는바 작심삼일이다.
시인은 괴테의 ‘시와 진실’을 하루에 한 쪽씩 읽겠다고 연초에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그러나 중도에 그만 흐지부지 더 진행을 못한 모양이다. 그러나 63쪽, 그러니 63일이나 지속했으니, 작심삼일은 아니리라. ‘작심 육십삼 일’이 되었구나.
그러고도 또 64쪽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겠다는 마음. 얇은 책장을 넘기며 빙긋이 웃는다고 했다. ‘시작’이란 새로운 세계를 향한 기대와 설렘. 그래서 늘 싱그러운 것. 싱그러운 기대와 설렘 속, 그저 빙긋이 웃음을 지을 뿐.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