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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연주자 안승구 씨

중학교 1학년 때 색소폰 만나, 40여년 동안 함께 해
수입보다 의미 있는 삶 중요함 느껴 색소폰 강습 시작

[천지일보=박수란 기자] “저에게 있어 색소폰을 가르치는 일은 영혼을 깨우는 것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서울 회현동 주민센터에서 색소폰을 가르치고 있는 색소폰 연주자 안승구(58) 씨의 얼굴에선 미소가 번졌다.

안승구 씨는 지난달 기자와 만나 40여 년의 세월 동안 색소폰과 함께한 사연을 꺼내놓았다. 단지 색소폰 부는 게 좋아 시작한 것이 이제는 그를 힐링하게 만드는 악기가 된 사연을 말이다.

안 씨는 이곳에서 10명 남짓의 수강생을 두고 색소폰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일주일 2번 2시간씩 수강생을 가르치는 일은 그의 즐거움이다. 색소폰을 불면서 변해가는 수강생을 보는 것은 그에게 남다른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

그에게 색소폰을 배우러 오는 사람의 상당수는 퇴직자들이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리고 허무한 마음을 색소폰으로 달래는 사람들이 많다. 1년에 한 번씩 무대를 마련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기도 하면서 자신감도 되찾는다고 말한다. 수강생들 중에는 색소폰을 불게 되면서 우울증도 없어지고 아내와의 사이도 더 돈독해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신의 아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해주면서 나름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면 부인들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 이런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안 씨에겐 소소한 행복이다.

“수강생들도 새로워지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새로워지고… 색소폰을 가르치게 되면서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됐죠.”

한때 색소폰은 그에게 밤무대에서 연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던 색소폰이 이제는 그가 힐링하는 도구가 됐다.

“50살이 넘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죠. 정상에 올라섰을 법한 나인데 밤무대에 서는 것으로 음악생활을 끝내야 되나하고요. 수입은 좋았지만 어느 순간 돈이 낙엽처럼 보이기 시작했어요. 주위에서 암에 걸려 허무하게 죽는 것을 보니 돈보다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3년 전부터 색소폰으로 재능을 나누기 시작했죠.”

▲  안승구 씨(왼쪽)가 회현동 주민센터에서 한 수강생에게 색소폰을 가르쳐주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안 씨가 처음 색소폰을 불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밴드부에 가입하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색소폰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독창대회를 나가는 등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쉽게 색소폰이라는 악기에도 매료됐다. 그래서 20살 때는 해군 군악대에 입대했다. 무려 2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말이다.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계속 걷고 싶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군 제대 후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한 실험실에 취직할 수 있었다. 막상 일을 해보니 너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색소폰을 다시 불고 싶었어요. 실험실에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색소폰을 사고 난 후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의 아버지는 음악생활을 반대하셨지만, 안 씨의 색소폰 대한 열정은 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삶은 색소폰을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20대 후반에 색소폰을 불기 위해 산에 들어가 24시간 색소폰만 분 적도 있다. 그때 신촌블루스 밴드를 만나 라이브 공연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받고 밴드 생활을 시작한 그다. 하지만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해 생활이 어려워지자, 결국 일본행을 택하게 된다. 일본에서 사는 10년 동안도 색소폰을 불 수 있는 직업을 택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음악생활을 계속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밤무대를 택해 음악생활을 이어갔다. 점차 색소폰은 생계수단으로 변해갔고 회의감을 느꼈을 무렵, 색소폰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찾은 답이 누군가에게 색소폰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밤일을 하다 보니 밤낮이 바뀌고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어요. 지금은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잦아지게 됐죠.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는 퇴직 후 일이 없어 막막한 이들에게 취미생활로 여유를 가져보라고 권유했다.

“퇴직 후에 ‘뭐 해야 되나’ 걱정도 많은데 걱정만 하고 있기 보단 우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신에 기운을 불어주는 취미활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요. 색소폰을 불어도 좋고 자꾸 일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그 안에서 떠오르는 것들이 분명 있을테니깐요.”

그는 자신의 재능으로 음악선교를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안 씨는 “중고 악기를 모아 캄보디아에 보내는 것이 꿈”이라며 “직접 가서 악기도 가르쳐주고 지원해 주면서 음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 행복함이 가득히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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