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박창신 신부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시국미사에서 발언한 것을 문제 삼으며 정사단이 종북세력이라 규정하고 정치적 행동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사진출처: 뉴시스)

불교·원불교도 시국 성명
보수 종교인, 맞불 시위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 대한 종교계 반응이 양분되며 종교계 ‘뜨거운 감자’가 됐다. 보수-진보로 나뉜 정치권의 반응에 이어 종교계도 보수-진보로 갈려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갑론을박하는 양상이다. 특히 종교계의 정치개입과 관련해 논란이 거세다.

천주교 내에서도 찬반으로 나뉘어 규탄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타 종교들도 견해를 내놓고 있다. 개신교계는 연합단체는 물론 교계 여러 단체들이 기자회견 등 입장 표명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발단은 지난달 22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를 비롯한 일부 사제들이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열면서부터다.

이 자리에서 박 신부는 3주기를 맞은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해 “NLL에서 한미 군사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북한에서 쏴야죠. 그것이 연평도 포격이에요”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번 사태의 핵심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해야 하며 책임 있는 박 대통령도 퇴진해야 한다”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주장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일부 사제들의 시국미사로 촉발된 종교계 찬반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먼저 천주교계에서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29일 사제의 직접적인 정치 개입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평신도의 정치 참여는 의무사항이지만 교회 교리서는 사제가 직접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날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은 정의구현사제단 규탄 집회를 열고 거리행진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열고 서울광장까지 거리 행진을 한 이후 교황청대사관으로 이동해 정의구현사제단 파문 건의서를 전달했다.

반면 로마 교황청의 아시아지역 매체는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에 대해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혔다고 최근 보도했다. 지난 26일 교황청립 외방선교회 산하 ‘아시아뉴스’는 ‘정부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제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다’라는 제목으로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가 박근혜 사퇴촉구 시국미사에서 한 발언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박 신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가 ‘국가의 적’이 됐다”면서 “새누리당이 박 신부의 발언에 분노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박 신부의 인터뷰 내용을 함께 실었다.

개신교계의 반응은 뜨겁다. 보수진영은 정의구현사제단을 규탄하는 시위를, 진보진영은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각각 벌이고 있다.

28일 선민네트워크(상임대표 김규호 목사)가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날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는 탈북동토회 ‘고향의 봄’ 실버합창단이 종북 신부들을 규탄하는 거리공연을 진행했다.

이날 한국장로회총연합회(대표회장 박경진 장로)와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대표회장 심영식 장로),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의회(대표회장 김형원 장로) 등 세 단체들도 시국성명서를 발표하고 천주교의 공식입장을 요구했다. 이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의 일부 사제들의 시국미사를 규탄하며 사과를 촉구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25일 성명을 내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정의구현사제단을 해체하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26일에는 국회 정론회관에서 규탄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한국교회언론회도 성명을 내고 “성직자들의 잇단 정치적 문제성 발언을 두고 온 나라가 불쾌해하고 있다”며 “이러한 발언으로 ‘남남갈등’의 또 다른 분쟁에 휩싸이게 된 일에 있어서 ‘종교와 정치의 위험한 관계’를 짚어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교회언론회는 “일부 종교인까지 나서서 불안을 키워가는 것은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할 뿐더러 종교인이 할 일이 아닌 것으로, 종교계 내에서도 불편과 비판을 가져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30여 개 진보 개신교 단체들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기독교 공동대책위원회’는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공동대책위는 현 정부의 소통 부재, 비판 세력을 종북·좌파로 몰아가는 정치권의 행태를 유신독재정권의 공안탄압으로 규정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불교계와 원불교계의 정의구현사제단지지 성명도 이어졌다. 승려 1012인 시국선언을 주도한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장 퇴휴스님)는 28일 조계사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참회와 민주주의 수호를 염원하는 조계종 승려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국정원 사태에 가세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국가기관 대선 불법개입 관련자 엄벌과 참회 ▲대선 불법개입 특검 수용 ▲이념갈등 조장 시도 중단 ▲기초노령연금제 등 민생 관련 대선공약 준수 ▲남북관계 전향적 변화 노력 등을 촉구했다.

이날 시국선언에는 조계종의 직할교구와 2∼25교구 등 전 교구본사에서 참여했다. 여기에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16명도 함께해 힘을 실었다.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 소속 교무 30여명도 29일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진상 규명과 종교인에 대한 폄훼 사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다. 사회개벽교무단에는 원불교 전체 교무 1600여 명 중 약 600명이 참여하고 있다. 교무 200여 명은 기자회견 이후 비공개로 시국토론회를 진행했다.

북한 종교 단체인 조선종교인협의회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 일부 종교인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데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북한 조선종교인협의회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시국 미사와 관련해 “남조선 민심의 반영”이라며 “같은 종교인으로서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사제단의 시국 미사까지 종북 미사로 몰아 현대판 마녀 사냥 광기를 부리고 있다”고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한편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혜인스님은 25일 총무원장실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정치 참여는 잘못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혜인스님은 “박창신 신부의 시국미사 논란으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고 신문방송과 인터넷 등 모든 매체에서 갑론을박 중”이라며 “종교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교는 국경이 없지만, 종교인은 국가가 있고 국민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며 “자유민주주의의 우리나라를 부정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며,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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