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 처리가 여야 간 다툼으로 파행되고 있다.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 민주당이 불참하면서 예산과 관련된 정책 질의조차 열리지 못하고 있다.

헌법 제54조 제2항에 의하면 예산안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하여야 한다’로 돼 있고, 동조 제3항에서 예산안이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에는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다음의 목적을 위한 경비는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집행할 수 있다’로 규정돼 3가지를 집행할 수 있는 준예산제도가 마련돼 있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에 대해 국회가 정밀하게 검토하고, 가급적이면 법정기일을 지켜 통과시키는 것은 행정부를 위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예산의 심의는 의회에 의한 정책의 결정, 행정부 통제, 사업예산의 확정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행해진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국가에 있어서는 중요한 처리다. 예산 처리를 위한 여야 간 원만한 합의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서 알고 있는 바이다.

지난 10월 1일 미국 의회에서 여야 간 합의 불발로 예산 통과가 되지 않아 그 때부터 10월 16일까지 정부가 폐쇄되는 ‘중앙정부 셧다운’이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상징이자 모범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1976년 이후 지금까지 총 18번의 정부폐쇄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미국은 회계연도 개시일(매년 9월 30일)까지 예산이 통과되지 않으면 바로 정부가 폐쇄돼 일부 공무원이 일자리를 잃고 무급의 처지에 당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부와 공무원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준예산제도로 예산을 집행하니 중앙정부가 폐쇄될 걱정은 아예 없다.

정치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생하는 게 기본이라는 미국 ‘셧다운’ 사태 교훈을 대한민국 국회는 새겨봐야 한다. 예산 과정에서 여당은 야당을 보고 “예산을 담보 잡아 몽니를 부린다”하고, 야당은 여당에게 “예산 단독 심사는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 맞받아치고 있는데 상대를 부정하는 말들은 정국을 꼬이게 할 뿐이다. 의회를 쪽박내자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여야가 경색된 대치 국면을 풀고서 상대를 파트너로 대접해야 하는데, 여당의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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