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는 이미 거문도에서 시작됐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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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등대

이생진
혼자 피는 동백꽃
꽃시장에서 꽃을 보는 일은
야전병원에서 전사자를 보는 일이야
꽃이
동백꽃이
왜 저런 절벽에서 피는지 알아?
그것도 모르면서 꽃을 좋아했다면
그건 꽃을 무시한 짓이지 좋아한 것이 아냐
꽃은 외로워야 피지
외롭다는 말을 꽃으로 한 거야

몸에 꽃이 필 정도의 외로움
이슬은 하늘의 꽃이고 외로움이지
눈물은 사람의 꽃이며 외로움이고
울어보지 않고는 꽃을 피울 수 없어
꽃한테 축하받으려 하지 마
꽃을 달래줘야 해
외로움을 피하려다보니 이런 절벽에까지 왔어


▲ 거문도등대
 

‘등대’의 저자 주강현 교수는 말했다. “등대의 낭만을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소리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역사적 등대’와 ‘오늘의 등대’를 구분하여 판단하는 혜안이 필요한 대목이다. 당시의 등대는 ‘제국주의의 첨병’ 그 자체였으며 일본인 간수들은 제국의 요새를 수호하는 파견대였다”

밤하늘을 밝히는 별처럼, 밤바다를 밝히는 낭만의 대명사 등대. 하지만 주 교수는 대한제국시기에 만들어진 등대는 낭만의 불빛 이전에 제국의 배를 인도하는 제국의 불빛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거문도 등대는 1905년 4월 12일 일본이 러일전쟁 중에 군수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만들었다. 경술국치보다 5년이나 앞서서 세워졌는데 이는 거문도가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등대로 가려면 먼저 고도에서 삼호교를 통해 서도로 넘어가야 한다. 선착장에서 등대까지 도보로는 한 시간 정도 거리이고, 택시를 타면 10분 정도 후 목넘어 앞까지 인도한다. 바닷물이 넘나드는 목넘어를 건너 동백나무가 이룬 푸른 숲을 지나면 등대를 만날 수 있다. 식민지 시대의 전조가 된 거문도와 거문도 등대, 풍경만 감상하고 오기에는 역사적 메시지가 너무 강렬한 곳이다.

박미혜/ mee@newsc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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