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의 힘으로 발전

천주교, 즉 로마가톨릭교회(라틴어: Ecclesia Catholica Romana, Roman Catholic Church) 또는 로마 가톨릭은 교황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10억인 이상의 신자가 있는, 기독교의 최대 교파다. 예수 그리스도를 창시자이자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그의 12명의 제자 가운데 하나인 성 베드로가 이끌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한자 문화권에서는 천주교(天主敎), 천주교회(天主敎會)로도 불리며, 조선 후기에는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로마 가톨릭에 대한 정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나온 ‘교회헌장(Lumen Gentium)’에서 볼 수 있는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은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그 단원인 주교들과 사도단의 직무를 계승하며 하나요,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하는 표현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종파이다.

 

로마가톨릭교회

 

▲ 명동성당. ⓒ천지일보(뉴스천지)
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로 단순히 가톨릭이라고 할 때에는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 그리스 정교회)까지를 포함해 지칭하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최고의 직위가 로마 교황인 정통 가톨릭교회를 이것과 구별하기 위해 로마가톨릭이라고 한다.

 

‘가톨릭(카톨릭)’이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로 ‘보편적’이라는 뜻으로 2세기 무렵부터 교회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또 4세기에 이르러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의 두 공의회(公議會)가 그 신앙선언 속에서 ‘가톨릭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이후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은 특정한 개인·인종·시대를 초월한 전체 인류를 위한 것이므로 적합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의 교의(敎義)

가톨릭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주장하는 점에서, 그 창립자의 사랑의 가르침이 곧 가톨릭의 교의(敎義)이다. 가톨릭의 교의는 성서와 성전(聖傳)에 바탕을 둔다. 성서는 신약과 구약으로 되어 있으며, 성전은 사도시대부터 구전해 내려오는 글로 쓰이지 않은 하느님의 말을 뜻한다.

가톨릭교의 교도권(敎導權)은 성서와 성전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을 인류에게 널리 전파하고 권위로써 이것을 해석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가톨릭 신앙은 이 교도권에 복종하는 점에서 프로테스탄트와는 다르다. 가톨릭의 신관(神觀)에서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신’이라 하며, 이 신관은 4세기 니케아·콘스탄티노플의 두 공의회에서 확립됐다.

하느님의 본성은 하나이지만 위격은 셋(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며, 아담의 죄로 하느님의 은총을 잃은 상태를 원죄(原罪)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속죄해 또다시 하느님의 은총을 회복하게 된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중개자가 된다. 또한 그리스도는 성사(聖事)에 의해 그 은혜를 사람들에게 베푼다. 성사는 은혜를 베푸는 의식으로서 일곱 가지가 있다. 즉, ‘성세(聖洗)’ ‘견진(堅振)’ ‘성체(聖體)’ ‘고백(告白)’ ‘혼인(婚姻)’ ‘병자(病者)’ ‘신품(神品)’ 성사이다.

 

한국천주교의 발전

 

▲ 명동성당 내부. ⓒ천지일보(뉴스천지)
조선 건국 초부터 숭유억불책(崇儒抑佛策)을 써온 결과 공리공론(空理空論)의 당쟁만을 일삼는 주자학(朱子學)이 성행했으며, 이 같은 풍조에 싫증을 느낀 일부 학자층에서는 현실적인 학문, 즉 실학(實學)을 내세우게 되었으니 이수광은 바로 그 선구적 인물이었다.

 

실학은 필연적으로 천주교를 믿는 서학(西學)과 결부돼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700년대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그의 문인 안정복(安鼎福) 등과 더불어 천주교를 깊이 연구하게 된다.  그는 특히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 아담 샬의 ‘주제군징(主制群徵)’, 이탈리아 신부 판도자의 ‘칠극(七克)’ 등을 애독하고 이들에 대한 발문(跋文)을 쓰기도 했다.

이익과 안정복 사이에 검토된 천주교는 마침내 이들 문인에 의해 이것을 믿는 신봉운동(信奉運動)으로 발전하게 되며, 주동자는 권철신·일신 형제와 정약전·약종·약용의 3형제 등이었다.

이들은 교리연구회를 열어 권철신 지도하에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권철신의 매부 이벽, 정약전의 매부 이승훈도 참가하게 된다. 특히 이승훈은 교리연구차 베이징으로 건너가 1784년 2월, 귀국에 앞서 예수회 신부 그라몽(梁棟材)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영세(領洗)신자가 됐다. 그는 귀국 후 이벽·권철신 형제에게 대세(代洗)를 주었는데, 이들은 후에 조선교회 창설의 주동인물이 된다.

정약전 3형제, 중국어 역관 김범우·최인길, 상인(常人) 출신의 이단원 등 수십 명에게 대세를 주어 1784년 겨울, 역관 김범우 집 대청에서 주일미사를 드리고 최초의 조선천주교회를 설립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한국의 천주교는 박해가 계속되는 형극(荊棘)의 길을 걸어야 했으며, 그러한 박해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 때까지 계속됐다.

 

독립된 교구로 승격

1831년 9월 9일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는 두 가지 교서를 발표, 그 하나는 조선교회를 베이징교구로부터 분리, 독립된 교구로 승격시킨다는 것이었으며, 또 하나는 브뤼기에르(한국성 蘇) 신부를 조선교구 초대 주교에 임명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조선교회 창설 후 47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소 신부가 조선 입국의 길을 찾다가 1835년 뇌일혈로 급서하자 프랑스의 모방(羅伯多祿) 신부가 성직자로서는 처음으로 입국에 성공했으며, 뒤이어 샤스탕 신부가 입국해 전교에 힘썼다.

이때 나 신부는 외방전교회의 방침에 따라 토착인 성직자 양성에 착안하고 최양업, 최(崔) 프란체스코, 김대건 등 세 소년을 마카오로 보내 로마 인류복음화성성(傳敎聖省) 동양경리부에서 학문을 닦게 했다. 이들은 조선시대에 해외로 보내진 최초의 유학생이었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서양학문을 배운 선각자들이었다.

 

한국천주교의 박해

천주교는 수용 직후부터 정부의 탄압 대상이 되어 100여 년 동안 10여 회에 걸쳐 크고 작은 박해를 겪어야 했다. 최초의 박해는 1785년 봄 이승훈을 비롯한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이 종교집회를 하고 있을 때 관리들에게 검거됨으로써 일어났다(을사추조적발).

체포된 신도들 가운데 중인 김범우가 귀양을 가서 희생됨으로써 첫 순교자가 되었다. 1795년의 박해는 주문모 신부의 체포령에서 발단했으며, 조직적이고 전반적인 박해는 순조(純祖) 즉위와 더불어 시작된 신유박해로 교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이에 두려움을 느낀 집권층에서는 천주교에 대한 일대 탄압을 단행하게 되었다. 

헌종(憲宗) 때 두 번째로 큰 박해가 일어났는데 그것이 1839년의 기해박해이다. 이 박해로 당시 3명의 선교사(앵베르 주교, 모방· 샤스탕 신부)가 모두 순교했고, 정하상, 우진길, 조신철 등 교회의 요인들이 많이 순교했다.

1846년의 박해(병오박해)는 김대건 신부의 체포가 그 발단이 되었다.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 최초의 신부로 서품된 그는 서해안에서 선교사의 입국로를 개척하다가 체포돼 순교했다. 1866년에 시작된 병인박해는 그 후 10년간 계속되면서 병인양요, 남연군묘 두굴사건(南延君墓盜掘事件), 신미양요 등으로 더욱 격화됐다. 이 박해에서 재한선교사 12명중 9명이 희생되었고, 8000여 명에 이르는 신도들이 순교하게 된다. 

한국에서 천주교가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모진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신앙의 힘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앙을 위해 희생까지도 감수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천주교회가 있을 수 있었으며, 1968년에는 100년 전 병인박해에서 순교한 근 1만 명의 신도  중에서 24위에게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諡福)함으로써 한국의 복자위(福者位)가 모두 103위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1983년 9월 로마 교황청은 이들 복자를 다시 성인(聖人)으로 승품시켰고, 84년 5월 로마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서울식전에서 이들 복자위 성인 승품식을 친히 집전하기에 이른다. 이어 1988년에는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또한 1969년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자랑이자, 평생을 소외된 자들을 위해 헌신해온 고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한편, 한국 천주교회는 현재 124위의 순교자를 복자 대열에 올리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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