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다”

▲ 밤으로의 긴 여로. ⓒ천지일보(뉴스천지)

1912년 8월 미국 작가 유진 오닐(1888~1953)이 “내 묵은 슬픔을 피와 눈물로 쓴 글”이라고 소개하며 충격적인 가족사를 담아냈던 자전적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가 1962년 이해랑(1916~1989) 연출로 국내 최초 초연돼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선사한 바 있다.

초연 47년 후 오는 18일,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가 한국 대표 연출가 임영웅의 연출로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새롭게 부활한다.

1962년 이해랑, 장민호, 황정순, 최상현, 여운계가 출연한 ‘밤으로의 긴 여로’는 원로 연극평론가 여석기 고려대 명예고수가 ‘산불’ ‘고도를 기다리며’와 함께 한국연극 최고의 작품으로 꼽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36년 만에 복원된 서울 명동예술극장 개관공연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자 이해랑 연출가의 20주기 추모공연을 위해 제작됐다.

특히 ‘유진 오닐 평전(초판에서 누락된 대사가 보완된 것)’을 집필한 영문학자 김진식이 번역했으며 희곡작가이자 평론가인 김명화가 드라마트루그로 참여해 초연보다 완성도 높은 대본으로 공연된다는 점은 관객들에게 또 다른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갈등과 애정이 심각하고 격렬하게 교차되는 관계이자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가 바로 가족이다. 이 연극 속 메어리 타이런(손숙)과 제임스(김명수)부부와 두 아들 제이미(최광일)와 에드워드(김석훈) 사이에서도 증오와 사랑이 뒤범벅된 채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고 과거에 대한 후회와 집착이 되풀이 된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이러한 관계를 꾸짖는 것도 아니고 비극적으로 다루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연출을 맡은 임영웅은 “이 작품은 가족을 폭로하고 비방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족을 변화시키는 작품”이라며 “요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연극”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신없는 연극들이 많은 가운데 차분하게 이번 연극을 보면 현대를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많은 교훈과 가르침이 있을 것”이라며 “작품이 오래 됐다고 해서 낡은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있는 명작”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면서 ‘연극은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다. 무대 위에서는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표현돼야 한다’는 초연 연출가 이해랑 선생의 말을 떠올리며 현 시대의 연극시장에 대한 안타까움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기도 했다.

제작진이 이번 공연에 중점을 둔 것은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한 가족을 무대 위에 등장시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증오심과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며 또 어떻게 다시 단란한 가정이 되는지를 관객들에게 리얼하게 보여줌으로써 ‘가족 간의 의사소통과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사랑과 증오, 용서와 화해, 연민과 절망이 뒤섞인 세상 모든 가족들의 아픈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밤으로의 긴 여로’는 미국 초연 연출자였던 킨테로의 동생이 공연을 보고 어떻게 우리 가족의 얘기를 연극으로 공개할 수 있냐며 화를 냈다는 일화도 있다.

이처럼 ‘밤으로의 긴 여로’는 유진 오닐 만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한 때는 친밀한 가족이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몇 년여에 걸쳐 극도로 악화된 관계에 놓인 타이런 가족에게서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갈등하며 서로의 아픔을 이해해가는 모습을 통해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과 불안감, 긴장감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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