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문화연구원 이찬수 원장. ⓒ천지일보(뉴스천지)
3. 갈등의 원인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한국 기독교(개신교)는 1884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쇄국과 쇄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급기야 1910년 일본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나라를 잃는 엄청난 경험을 하다 보니, 그동안 나라를 지탱해오던 전통적인 것에는 더 이상 기대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고 또 추구했다.

당시 상당수 한국인에게 새로운 것은 대체로 서양문명, 특히 미국 문명이었다. 미국의 종교인 기독교를 믿으면 미국처럼 부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종교적인 차원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로 이어졌는데, 그 호감의 요지는 대체로 기독교를 믿으면 미국처럼 강해질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심 끄덕이던 내용들이기도 했다. 구미처럼 부강해지려면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며, 언론들이 기독교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기사화 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기독교는 일종의 근대 문명의 ‘기호’ 같은 이미지로 한국 사회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급속한 성장, 권력화의 기반도 이 때 마련되기 시작했다.

 

4. 기독교 근본주의

주지하다시피 한국에 소개된 미국의 기독교는 대단히 보수적이었고, 교리는 근본주의적이었다. ‘근본주의’는 낱말 뜻상으로는 종교적 근본을 추구하는 중립적 자세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진리의 근본을 기독교 안에서만, 다른 종교나 문화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특정 교리 안에서만 찾는 자세나 다름없었다.

이런 자세는 여러 종교들의 공존을 경험해온 한국적 정서와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라의 멸망이라는 충격적 사실을 경험한 한국인들 중 상당수는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근본주의적 가르침에서 무언가 명쾌함과 신선함을 느끼기도 했고, 근본주의적 선교사들의 가르침을 정통의 이름으로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식 기독교를 받아들이면 미국처럼 잘 살게 될 수 있으리라는 민중적 요구가 반영되어 있었다.

이 때 지적해야 할 것이 더 있다면 기독교의 ‘보수성’이다. 물론 ‘보전하고 지키는(保守)’ 성향이나 행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무엇을 보전하고 지키느냐’에, 그 ‘보전하고 지키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있을 것이다. 이른바 ‘보수적’ 한국기독교가 ‘보전하고 지키려는’ 것이 많은 경우 자기중심적, 타자 억압적 자세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데서 문제는 비롯되는 것이다.

 

5. 보수주의

일제 때만 하더라도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하여 기독교는 소수 종교였다. 어느 사회든 소수 집단이 사회 전체에 도전적이거나 그런 의미의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언가 힘이 생겼을 때, 하나의 권력이 되었을 때, 문제가 되어도 되기 마련인 것이다. 가령 일본의 기독교회도 상당히 보수적이지만, 워낙 소수이기에 사회적으로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일본기독교인 자신도 사회에 대한 특별한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기독교(특히 개신교)의 경우는 특히 해방 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거치면서 힘을 얻어가기 시작했고, 정치권 안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기 내각의 절반 가량은 기독교인이었으며, 1948년 5월 제헌의회 때는 이윤영 목사의 기도로 개회를 알렸고, 8월 15일 정부수립 선포식 때는 “하나님과 동포 앞에” 대통령 직무 수행을 선언하는 문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기독교인이 전 국민의 5%에 못 미치던 1945년 미군정 당시 이미 크리스마스가 국가적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1951년에는 군종제도도 생겼다. 물론 군종의 대다수는 목사 등 기독교인이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는 동서 냉전 시대, 국내적으로는 남북 분단 시대를 거치면서 기독교는 정부의 반공 이념을 신앙의 이름으로 뒷받침해주었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반공을 국시로 하는 정부 이념 내지 권력에 가까운 종교가 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은 6.25 전쟁 후 가난에 시달리던 한국인에게 상당 부분 교회를 통해 물자를 지원함으로써, 교회에 나가면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이미지도 각인시켜 놓았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에서 기독교는 권력과 가까운, 서구 문명의 기호처럼 받아들여져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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