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

석지현(1947~  )

이제 짐을 다 꾸렸으니

다북쑥처럼 흔들리며 떠나려 하네

하얀 가을 먼먼 하늘이여

햇살은 길에 가득 바람 끝에 몰리네

[시평]
여름의 기운이 수그러들고,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서서히 일어서는 절기, 입추를 맞으면, 왠지 어딘가로 떠나야 할 듯하다. 이제 차분히 짐을 꾸리어 떠나야 할 듯하다.
‘다북쑥’은 덤불을 이루며 자라는 쑥과의 하나로, 흔히 묵은 무덤에서 많이 자란다. 그러므로 ‘다북쑥’이라고 하면, 그 쓸쓸함이 더해지는 이름이다. 그래서 이 다북쑥마냥 흔들리며 떠나고자 하는 그 마음, 왠지 더욱 쓸쓸해 보인다.
지난여름의 뜨거웠던 삶 이제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먼먼 하늘, 가을 햇살은 그 가는 길 가득 바람 끝에 몰려오는데, 스산한 가을바람과 함께 어딘가로 떠나기 위하여, 이 가을, 우리 하나둘 마음의 짐 꾸려야 하나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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