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경북도 행정에 지자체 갈등만 증폭

▲ 지난 4월 14일에 개관한 청도군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 ⓒ천지일보(뉴스천지)

새마을운동발상지 표현 사용금지가처분신청 각하 결정

‘경북 청도군 신도1리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용금지가처분신청에 대해 법원이 최근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청도군의 새마을운동 원조 주장을 금지할 수 있는 법적인 명분이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이번 가처분신청은 지난 4월 9일 경상북도가 새마을 관련 연구단체에 발주한 용역보고서 ‘경상북도 새마을운동 97년사 발간’이 발표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이 보고서에서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신도1리가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고 결론짓자 포항시민이 크게 반발했다.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선 이상범 포항시의원 등 포항시 관계자와 ‘(사)포항시새마을회의’는 같은 달 14일 ‘발상지는 신도1리가 아니라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라고 주장하면서 경북도와 청도군을 상대로 명예훼손금지 등 사용금지가처분신청을 냈다. 문서나 사진 등의 매체에 ‘신도1리가 새마을운동 발상지’라는 표현을 일절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발상지라는 개념에 대한 서로 다른 주관적인 기준과 판단에 따른 다툼에 불과하다”며 “이 사건 다툼이 법원이 판단해야 할 법률상 권리관계에 대한 분쟁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상범 의원 등은 새마을운동이라는 역사적인 일이 처음으로 일어난 곳이라는 의미로 발상지(發祥地)라 하고, 경북도와 청도군은 새마을운동이라는 새로운 생각을 처음으로 궁리한 곳이라는 의미로 발상지(發想地)라 한다”면서 이같이 결정했다.


발상지 논란 시초 ‘박정희 대통령의 인연’

양측이 발상지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이 이처럼 다른 것은 1970년 새마을운동을 처음으로 제창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먼저 신도1리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은 1969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남지역 수해복구현장을 시찰 중이던 박 대통령은 마을 주민 스스로 지붕을 개량하고 담장을 정돈하는 등 잘 가꿔진 신도1리의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구상했기 때문에 이곳이 ‘처음으로 궁리한 곳’, 즉 발상지(發想地)라는 것이다.

반면 이 의원 등은 박 대통령이 1971년 9월 전국 시·군수 비교행정회의를 열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기계면 문성리를 시찰한 자리에서 “전국 시·군수는 문성동 부락처럼 지도해 ‘자조, 자립, 협동 정신’ 곧 새마을운동 정신 주입에 점화역할을 하라”고 말했기 때문에 문성리야말로 ‘처음 일어난 곳’이란 의미의 발상지(發祥地)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이 발상지를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 속에 양측의 갈등과 논쟁은 지난 40여 년 동안이나 지속돼 왔다. 경운대 새마을아카데미의 한 관계자는 “발상지란 뜻은 태동했다는 뜻인데,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보니 논쟁거리가 됐다”고 말했다.


연구용역 결과 발상지 논란에서 청도군 ‘판정승’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북도의 연구용역 발주로 작성된 연구보고서 ‘경상북도 새마을운동 37년사 발간’이 발표됐다. 이 보고서는 1970년 제창된 ‘새마을가꾸기사업’이 ‘새마을운동’으로 전개됐다는 결론을 도출,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는 ‘청도군 청도읍 신도1리’라고 밝혔다.

문성리에 대해서는 1972년 새마을가꾸기사업이 새마을운동으로 확장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최초의 성공사례로 평가했다. 보고서는 이 마을이 새마을운동 모범마을로서 역할과 위상을 가진다면서 논쟁의 선을 그었다.

보고서가 이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새마을운동이 처음부터 단독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 새마을가꾸기사업에서 이어졌다는 데 주목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도 “새마을운동은 새마을가꾸기사업과 별개의 국가정책이 아니라, 새마을가꾸기사업을 추진해 얻는 교훈을 바탕으로 확대된 운동으로 상호 긴밀한 관계”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문성리는 새마을가꾸기사업 및 새마을운동의 모범적인 성공사례지 중 하나라고 보일 뿐, 소명사실만으로는 새마을운동이 처음 태동된 곳이 문성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즉, 문성리 측이 주장하는 발상지(發祥地)의 의미에도 충분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17일 개관 예정인 포항시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관. (사진제공: 포항시청)

오락가락하는 경북도… 청도군과 포항시 거센 반발

새마을운동발상지를 신도1리로 규정한 용역보고서가 발표되자 포항시민 250여 명은 “용역발표는 원천무효”라고 외치면서 강력 항의했다. 이에 당황한 도는 ‘용역을 다시 하겠다’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경북도의 일관성 없는 태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8월 25일 포항출신인 공원식 정무부시장이 포항시 새마을회관에서 가진 주민 간담회에서 “경북도는 어느 특정도시를 발상지로 지정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이다. 신도1리가 발상지라던 입장이 며칠 만에 번복된 것이다.

이와 함께 간담회에서 앞으로 포항시과 청도군이 자율적으로 새마을 발상지 명칭을 사용하기로 협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에는 청도군의 반발을 샀다. 청도군은 아무 협의도 없이 논란의 불씨만 잠재우려는 경북도의 해결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공 정무부시장이 청도를 방문해 공식 사과까지 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경북도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청도군청 관계자는 “포항시 인구는 50만이고 청도군은 5만이니 선거 유권자가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당장 느낄 수밖에 없다”며 “내년 선거를 의식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신도1리 이장이었던 박종태(82) 씨는 “지난 4월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 개관식 때 김관용 도지사가 청도 신도마을이 발상지라고 확실히 얘기했다. 포항이 반발하니 발상지에 대해 고려할 여지가 있다며 다시 말을 바꿨다”면서 “말을 번복하니 우리는 분통이 터진다”고 분개했다.


갈등조정 실패하며 국비도 낭비

경북도가 양측의 갈등 조정에 실패하면서 예산마저 낭비되고 있다. 청도군 신도1리에 지난 4월 국비 14억 원 등 총 62억 원을 들인 발상지기념관이 건설된 데 이어 오는 9월 17일 포항 문성리에도 42억 원(국비 11억 원) 규모의 발상지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경북도가 양 도시의 눈치를 보느라 예산을 이중으로 지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갈등 조정자 역할을 감당해야 할 당국이 결단성 없는 정책으로 오히려 양 주민의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어 경북도의 일관성 있고 확고한 정책 의지가 무엇보다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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