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익 정치평론가

 
지난 18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을 때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다수당의 날치기와 소수당의 폭력저지라는 국회의 고질적인 폐해를 끝장내기 위해서 다수당은 의안을 날치기 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고 소수당은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 저지를 하지 않음으로써 국회 내의 폭력적인 사태를 더 이상 연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

18대 회기 말에 여야의 극적인 타협으로 만든 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이 법안통과를 소수당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동의가 없으면 사실상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여야 간 합의 없이는 어떤 법률이라도 통과시킬 수 없게 되어 있다. 다수당이 소수당의 의지와 관계없이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국회의석 180석 이상을 얻어야 하고 상임위 정족수에서도 5분의 3에 해당하는 자당 소속의원이 있어야 한다. 반대로 법안통과를 저지하려면 120석 이상만 확보하면 다수당의 어떤 법안이라도 막아낼 수 있게 되어 있다.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1당에 대항해서 2당, 3당, 4당이 합쳐서 120석 이상이라도 가능하게 되어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국이라면 여든, 야든 법안 통과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국회는 대화와 타협을 하고 안 되면 다수결의 원리가 작동되는 민의의 장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뜻을 반영시키는 것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고 국회의원의 결정은 국민의 다수의사로 인정해 주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이 아니던가? 국회선진화법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 전에 국민의 뜻이라고 본다면 충분히 존중해야 할 법안인 것이다. 그런데 이 법안이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논의조차 해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이 법안은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결의 원리에 반한다. 5분의 3이 동의할 경우에만 법안을 상정할 수 있고 통과될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국회의 결정사항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쌍방이 동의하거나 일방이 양보할 경우에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여야의 대립이 격화되면 법안 하나도 통과될 수없는 구조이다. 우려하던 현실이 작금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이 법안이 가결된 지 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절대다수당인 새누리당이 이 법안에 발목이 잡혀버린 것이다. 지금은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지만 언젠가 민주당도 똑같은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새누리당 내의 남경필, 정병국, 김세연, 황영철 의원 등 15명은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선진화법 악용은 민생정치를 외면하는 것이고 폐기는 폭력국회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의 주장은 18대 국회에서 이 법안에 찬성한 의원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법안이 개정된다고 해서 폭력국회로 되돌아간다는 주장은 지나친 억측이다.

새누리당의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법안에 대해서 잘못되었다는 뜻으로 스스로 비판했다. 그는 “폭력 없는 국회를 만들자 했던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법”이라면서 “자신은 당시 반대했지만, 우선 처리하고 다시 부작용이 생기면 바꾸자는 논리에 설득당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자성했다.

같은 당의 조해진 의원도 황우여 대표와 남경필 의원 등 선진화법 개정 반대파에 대해 “그분들이 앞장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법만 만들어 놓고, 국회가 아무것도 안 되도록 해놓고 이 법은 그대로 지켜야 된다는 것은 무책임한 얘기”라고 말했다. 이인제 의원도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서 “이 법안은 충분히 토론하고 마지막엔 다수결로 결정한다는 원리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 “국회라는 것이 여야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금은 제2당으로 이 법안에 대해서 고수를 주장하고 있겠지만 언젠가 의회민주주의에 맞지 않는 5분의 3 논리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이 법안이 지속 된다면 정당은 굳이 의원수를 과반을 넘기려는 목표를 정할 필요가 없겠다. 120석을 안정 5분의 2석으로 정하고 언제든지 국회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