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영원하다

▲ 문학의 집, 서울에서 마련하는 문인 초청 강연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 2006년에 강연하는 고은 시인 ⓒ천지일보(뉴스천지)

근래에 들어 미당만큼이나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분이 바로 고은(高銀) 시인이다. 처음 후보에 거론된 것이 2005년이니 그간 아쉬움도 그만큼 커졌다. 대 시인의 문학세계에 대해 이 짧은 글에서 얼마나 언급할 수 있을 것인가? 하여 시집 <만인보(萬人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시인은 1986년에서 2010년까지 총 30권, 4,001편의 시 속에 5,600여 명의 인물들의 사연을 담았다고 한다.

외삼촌
고은
외심촌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갔다
어이할 수 없어라
나의 절반은 이미 외삼촌이었다
가다가
내 발이 바퀴살에 걸려서 다쳤다
신풍리 주재소 앞에서 옥도정기 얻어 발랐다
외삼촌은 달리며 말했다
머스매가 멀리 갈 줄 알아야 한다
(후략)

기자는 유독 병치레가 잦은 어린아이였다. 체력이 약해 감기를 달고 살았고, 거기에 유독 식체(食滯)를 자주해 체를 내기 위해 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고 비포장 도로를 가다 떨어진 기억, 부모님이 끄는 리어카 위에 타고 가다가 언덕길에서 떨어지며 발목이 리어카 바퀴에 끼어 크게 다친 기억…… 고은 시인의 ‘외삼촌’을 보니 이런 기자의 기억들이 묻어난다. <만인보(萬人譜)>에 등장하는 사람들만이 만인(萬人)만이 아닌 것처럼, 기자 역시 만인(萬人)이고 <만인보(萬人譜)>의 주인공이다.

이것이 <만인보(萬人譜)>가 이 땅을 살았던 이들의 대서사시인 까닭이다. 그들 중에는 길이길이 후세대의 모범이 될 정도로 한평생을 잘 살았던 사람도 있지만, 유감스럽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어느 한순간으로 할 수는 없다. 평생의 삶의 노정을 살펴봐야 한다. 앞서 우리나라에서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했지만, 자랑스럽게도 우리에겐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 역시 만인(萬人) 중 하나이다. 지난 8월 18일은 그분의 서거 4주기여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김대중
고은
고난이 필요한 시대 그는 고난의 과녁이었다
일본 수도의 한 호텔 안에서
토막져 죽어야 했다가 살아났다
현해탄 복판에 던져져
물귀신이 되어야 했다가 살아났다
71년 대통령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졌다
그의 파도치는 웅변이
백만 인파를 지진처럼 흔들어댔다
그는 혼자서도
백만 인파였다
(중략)

한국에서 가장 정밀한 그를 모르고 살 수 없었다.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이거나 모든 사람을 잠깐 속일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일생도 이와 비슷하다. 잠시 잠깐 어떤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인동초(忍冬草)처럼 고난을 이기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갔기에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고은 시인 역시 시인으로서 나라와 민족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로, 행동으로 말했다. 그런 시인이 2006년 10월 문학의 집, 서울에서 마련한 수요문학광장에 연사로 초대되었다. 시인은 강연에서 자신과 시의 만남은 불가피했다고 고백한다. 50년 넘게 시인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말이다.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시골 황톳길을 걸어 자연과 동행하며 학교를 다니던 중학생 소년은 어느 날 꺼므꺼므한 저녁 길을 걷다가 운명적으로 또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떨어뜨리고 간 한하운의 시집을 발견하게 된다. 이 만남은 고흐와 같은 화가를 꿈꾸던 소년의 꿈을 단박에 시인으로 바꿔 놓았다.

이후 시인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겪으며 출가(出家)를 했다 환속(還俗)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분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치열하게 시를 써왔고 그 증거가 바로 1986년에서 1990년까지 써내려간 만인보(萬人譜)와 백두산 같은 대 서사시와 수많은 작품들이다. 그 중 50여 권의 시집은 1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인들에게 소개되었다.

고은 시인은 의문이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구분 짓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일을 기계적으로 하면 인간도 기계가 될 수 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야 프로그램 된 대로 움직이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힘이 있기에 보고, 느끼고, 판단하며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틱한 삶을 하루하루 살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즐거운 게 좋다. 우리는 오늘도 행복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살아야 한다.

김응용 객원기자/ haenguna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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