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서 백마강까지, 천도의 사연들

▲ 궁남지 ⓒ천지일보(뉴스천지)

백제의 끝을 이야기하기 전에 백제의 시작부터 짚고 가자. 한강에서 시작한 백제가 왜 백마강 유역까지 내려가게 됐던 것인지 말이다. 백제는 도읍지의 위치에 따라 한성백제 493년 (BC18년~AD475년), 웅진백제 63년(AD475년~ AD538년), 사비백제122년(AD538년~AD660년)으로 나뉜다.

초기 백제는 한강유역을 끼고 있는 한성 곧 지금의 서울에 수도를 두고 한반도의 가장 풍요로운 지역을 차지하며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4세기 근초고왕의 맹활약을 통해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이룩하며 고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AD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왕도인 한성이 함락되고 21대 백제왕인 개로왕이 전사하게 되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왕도를 빼앗긴 백제는 한성을 버리고 웅진 곧 지금의 공주로 수도를 옮긴다. 500년의 한성시대를 마감하고, 웅진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주변이 험한 산세로 둘러싸인 웅진은 적을 방어하기에 매우 유리한 곳이었다. 그러나 웅진 천도 후엔 한성시대 만큼 중앙집권적 정치를 펼치지 못했다. 개로왕이 전사한 후 그의 아들 문주가 즉위하여 웅진으로 천도하고 다시금 국방에 힘을 기울였으나 실추된 왕권을 세우고 국력을 강화하는 일이란 쉬운 게 아니었다. 결국 문주왕을 비롯해, 삼근왕, 동성왕까지 63년이라는 기간 동안 세 명의 왕이 모두 유력 귀족에 의해 피살되고 말았다. 웅진시대를 살았던 왕들에게 웅진은 아마도 비극의 땅이었을 것이다.

동성왕 이후 즉위한 무령왕은 선대왕들이 귀족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목격해왔다. 그래서 특히 신구 귀족세력들의 균형유지에 힘썼다.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해 지방에 대한 통제력도 강화했다. 백제를 다시 강국으로 만들며 중흥을 이뤄낸 무령왕, 비로소 백성과 왕실은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이때 백제 문화도 꽃피게 된다. 하지만 늘어나는 인구와 좁은 땅, 금강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 그리고 왕실의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선 새로운 땅이 필요했다. 그래서 무령왕의 아들 성왕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비로 천도를 단행한다.

성왕은 왜 사비를 새 도읍지로 삼고자했던 것일까. 당시 사비는 도읍지로서 불리한 점이 많은 곳이었다. 지반이 낮았으며 수시로 물이 차오르는 습지였기 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버려진 땅’이었다. 하지만 토호 세력이 없어 왕권을 강화할 수 있고, 넓은 땅이 펼쳐져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또 백마강을 휘감아 도는 지형으로 배들의 정박이 자유롭기 때문에 바다를 이용해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대륙의 끝자락이 아닌 해양의 중심 백제. 무엇보다 사비를 감싸고 있는 백마강은 외부의 침공을 막을 수 있는 자연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역할을 했다.

모든 조건을 갖춘 땅이 어디 있을까. 성왕은 사비의 가능성에 올인했다. 도읍지는커녕 사람이 살기 어려운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땅이었으나 약점을 역으로 이용하거나 보완해 새로운 도성, 계획 신도시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습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흙을 파내고 주변의 물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인공 저수지를 만들었다. 그 예가 궁의 남쪽에 있다하여 이름 붙은 궁남지다. 저수지에 모인 물은 농경수나 홍수를 조절해주었을 것이고, 파낸 흙은 도성을 쌓는데 사용했을 것이다. 또 무른 토양을 다지는 데는 판축공법을 썼는데, 마치 시루떡을 여러 장 쌓아올린 것 같이 서로 다른 흙을 교대로 부으면서 절구 같은 도구로 꾹꾹 다져서 만들었다. 돌보다 강한 흙성을 쌓았던 것이다.

성왕은 538년 사비천도 이후 왕권강화와 백제중흥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 중앙의 16관등제와 22부제, 불교 교단 정비 등 체제정비를 위한 개혁정치를 실현해 나갔다. 551년에는 신라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해 70여 년 만에 한성 고토를 회복했다. 그러나 비밀리에 고구려와 동맹을 체결한 신라의 배신으로 한강유역을 다시 신라에게 빼앗기고 백제의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 매복병에 의해 시해되고 만다. ‘영원한 동맹은 없다’는 진실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백제 비극의 시작은 나제동맹의 결렬에서 오는 배신감과 성왕의 죽음 그리고 비옥했던 땅 한성에 대한 그리움에서 그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박미혜/ mee@newsc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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