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이 삼천궁녀와 함께 향락에 빠져 나라가 망했다’
이 한 줄의 말로 백제 역사를 갈음한다면, 그것이 백제에 대한 기억의 전부라면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정사에 힘써야 할 왕이 여색에 사로잡혀 흥청망청이라…. 망하는 것이 당연하지. 하지만 백제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나라. 700년 문화강국의 백제가 무슨 연유로 일순간 멸망했는지 역사의 파편들을 따라 재조명해본다.

 

▲ 구드래나루터에서 고란사까지 백마강 위를 오고가는 황포돛배 ⓒ천지일보(뉴스천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르 흐르는 땡볕 더위 8월 중순, 답사 일행은 사비 백제의 흔적을 찾기 위해 산정상도 마다하지 않고 올랐다. 먼저는 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긴 성왕이 천도의 꿈을 키우며 올랐을법한 해발 107m의 부산(浮山). 부산 정상에 오르니 백마강이 휘감고 있는 부여 군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천혜의 방어선을 가진 땅 부여가 한 눈에 펼쳐져 있으니 천도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으리라.

두 번째,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고 전해지는 낙화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서 겹겹이 서있는 바위들과 그 어딘가에서 몸을 던졌을 궁녀들을 생각하며 백마강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번엔 강에서 낙화암을 바라보기 위해 배를 타니 망국의 슬픔을 감추는 듯, 푸른 잎들이 낙화암 절벽을 뒤덮고 있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겨울이 오면 절벽의 거친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1400년 전 백제 멸망의 진실을 말해주려나. 절벽 끝으로 내몰린 백성들, 절박했던 그 순간들을 상상해본다.

▲ 삼천궁녀가 떨어졌다고 전해지는 낙화암 ⓒ천지일보(뉴스천지)

세 번째, 백제가 망하기 직전 신라와 혈전을 벌였던 황산벌 전투. 전적지를 찾던 중에 웃지 못 할 에피소드 하나. 황산벌전적지가 어디냐고 묻는 필자에게 “이 무더운 날에 논산까지 와서 황산벌을 찾는 것을 보니 계백장군 시절에 태어났던 여인이 환생한 것 같다”며 아주 진지하게 말을 건네는 분이 있었다는 것. 뜬금없이 환생한 여인이 되어 신라 5만 대 백제 5천이 싸웠던 현장에 도착했다. 군사들의 터질 듯한 함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그 외에도 백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정림사지오층석탑, 궁남지, 능산리 고분군, 국립부여박물관, 백제역사문화관 등을 통해 백제의 왕들,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고 느끼고 체험해본다.

부여답사는 1400년 전 역사를 찾아 나선 여행이었지만, 사실은 미래를 열기 위한 여행이었다. 학창시절 달달 외워도 시험이 끝나면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 그런 역사가 아니었으니까. 깨알같이 얽히고설킨 전후관계를 생각하며 ‘왜 그랬을까?’하는 물음표를 마음에 품고, 땀범벅이 되며 발로 찾은 역사의 현장에서 얻은 것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처럼, 수천 년 전의 일을 찾아 나선 길이었지만 언제나 마지막은 현실과의 비교였다.

박미혜/ mee@newsc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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