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감정분야의 외부전문가가 형사 재판에 참여해 의견을 내고 재판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형사재판의 전문심리위원제도는 그동안 극소수 재판에만 활용돼 왔다. 이번 재판에서는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전문심리위원을 위촉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했다는 점과 검찰도 법원의 의지를 감안해 상고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대구고법 형사합의1부(임종헌 부장판사)는 실화를 가장해 화재보험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자신의 마트에 방화를 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방화를 저질렀다는 검사의 주장도 상당부분 인정되나,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김 씨는 화재현장에서 상당한 거리에 있었고, 발화추정지점에는 화장지, 식용유 등 인화성 물건들이 쌓여있던 사실 등이 존재해 피고인이 방화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가 직권으로 선정한 형사전문심리위원이 이 사건 화재의 발화원인에 관하여 제출한 의견서의 기재내용에 비춰 보더라도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앞서 검찰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 방화 가능성이 존재하고, 피고인이 화재 발생 직전까지 발화추정지점 근처에 위치한 천막창고 안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점, 평소 담배를 피웠던 점, 당시 매출부진을 겪었던 점 등을 종합하면 방화사실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 씨는 영업부진으로 자신이 운영하던 마트의 매각이 어렵게 되자, 20억 원의 화재보험금을 타내려고 냉동창고 측면 판넬에 불을 놓아 마트 내부 등 시가 5억여 원 상당을 태워 소훼한 혐의다.

이번 판결에서 무죄판결이 나오기까지는 당시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주로 작용했지만, 형사전문심리위원의 의견 제출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구고법 역시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심증은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해 형성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에 의한 형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재판부가 사건의 쟁점에 관해 가지는 합리적 의심을 능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외부전문가를 공판절차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밝히며 이번 판결에 큰 의의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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