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8일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김현정 작가. 소탈하면서도 특유의 색깔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는 예술가.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럴 때도 있다-누구에게나 한 번쯤, 뜨거운 시절’ 김현정 작가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어린 시절 온몸을 휘감았던 열병은 그녀의 청각을 앗아갔지만 그로 인해 남보단 색다른 시각으로 더 세상을 재밌게 살아가게 된 사람이 여기 있다.

비장애인보다는 생활하는 면에서 수월하지 못하지만 “난 자장면 시켜 먹고 싶을 때 못하는 것 빼곤 어려운 것 없다”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진짜 털털한 언니! 청각장애 사진작가 김현정을 만나봤다.

◆패션에서 사진으로

김 작가가 근래 발간한 ‘그럴 때도 있다-누구에게나 한번쯤, 뜨거운 시절’은 그녀가 사진 공부를 하기 위해 영국 런던예술대학교에서의 유학생활 한 내용을 사진과 글로 담아 낸 책이다.

이 책에서 김 작가는 청각장애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영국에서 영어와 사진을 배우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장애인도 타국에서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기란 녹록지 않은데 김 작가는 혼자서 영국의 곳곳을 점령하듯 적응해 나간다.

하지만 김 작가가 영국유학 생활에서 자신을 다스린 생각은 바로 “하루만 더, 일주일만 더, 한 달만 더 견뎌보자!”였다. 타국에서 혈혈단신으로 자신을 다독이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며 쉽지 않던 유학생활에 열심을 다 했을 김 작가의 모습이 책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김 작가는 “원래 어릴 때부터 어디 가서 기죽지 않고 당찼다고 부모님이 그랬어요.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영국에선 혼자 유학하면서 많이 힘든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걸 솔직하게 또 편한 형식으로 썼더니 많은 독자분이 공감해 주고 심지어 가까이 있는 지인들도 ‘네가 그런 고민을 갖고 힘들어했을 줄은 몰랐었어~’라고 말하더라고요”라며 슬며시 웃어 보였다.

김 작가는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했다. 패션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점차점차 커리어를 쌓았지만 그를 힘들게 한 것이 있었다. 바로 ‘전화통화’였다.

“아무리 회사에서 나를 배려해주고 해도 급한 일을 전화로 처리할 때는 많이 힘들었죠. 저는 전화로 소통하는 게 어렵거든요. 하지만 사진은 나의 생각과 견해 그리고 철학을 담아 보여주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예요. 그런 점에서 패션과 사진은 완전히 다르죠.”

자신을 표현하는 새로운 매개체인 사진, 김 작가의 새로운 지표가 이제는 세상과 자신의 소통의 창구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인 최초 英‘i-D’ 매거진에 작품 실려

영국 유학 당시 김 작가의 친구들은 그녀의 장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배려해 줄 부분은 하되 그녀의 장애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눈’을 갖고 김 작가를 대했다.

대려 김 작가의 영어발음에 대해 “넌 발음이 왜그래?”라고 놀리면 김 작가는 “너 한국말 잘해? 못하지? 내가 영어발음 안 좋은 것도 같은 거야!”라며 당당히 받아치며 일상적인 농담을 주고받았다.

선진국의 기술과 예술적 철학을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떠난 김 작가는 영국 ‘i-D’ 매거진에 작품이 실리는 소중한 기회를 맞이한다.

‘i-D’ 매거진은 예술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로 영국에서 사진분야 중 권위있는 잡지로 유명한데 한국인 작가로는 김 작가가 최초로 당선작에 선정돼 작품이 실리게 된 것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제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파격적이게 라면 박스를 뒤집어쓰고 찍었죠.”

파격적인 김 작가의 표현력은 결국 소통에 성공했고 작품성까지 인정받게 됐다. ‘하루만, 일주일만, 한 달만 버텨야지’라는 그녀의 매우 인간적인 끈기 곧 긍정의 힘을 보아 김 작가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김 작가는 지난 10월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그럴 때도 있다-누구에게나 한번쯤, 뜨거운 시절’에 담긴 사진 작품을 전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청각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회도 가졌다. 기자는 김 작가에게 ‘나에겐 장애란 어떤 것이냐’라고 질문했다.

사실 매우 무거운 질문 일 수도 있었지만 김 작가는 의외의 답변을 날렸다. “나에게 장애란, 자장면 시켜 먹고 싶은데 빨리 못 시켜먹는 정도?”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이는 김 작가. 그녀의 말대로 정말 기 세고 당당하고 털털한 친한 언니를 만난 기분을 들게 했다.

김 작가는 어린 시절 열병을 앓고 난 뒤 청력을 잃었을 때부터 모든 것이 도전이었을 것이다. 말을 배우고, 비장애인 친구들과 소통하고, 패션을 배우고, 사회생활을 하고, 사진을 배우고, 또 영어의 악센트를 익히기까지. 하지만 도전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김 작가의 긍정의 힘은 대한민국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우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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