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개각에 따른 새 장관후보자들이 발표되자마자 후보자들에 대한 각종 문제 사안들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예외 없이 한 나라를 이끌어갈 ‘파워엘리트’들의 법적, 도덕적 흠결들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개각 때마다 되풀이되는 연례행사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먼 이웃나라에나 해당되는 얘기처럼 들린다.

후보자들에게 거론되는 레퍼토리도 천편일률적이다. 위장전입, 논문표절, 병역기피 의혹 등등. 외국유학생 출신은 대개가 본인 또는 자녀의 병역문제나 이중국적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부동산이 좀 있는 분들은 부동산구입을 위한 위장전입이 단골 메뉴다.

또한, 자녀를 서울의 8학군 명문고에 보내기 위한 이른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식의 위장전입도 새 메뉴로 등장했다. 대학교수 출신들은 논문검증이라는 새 잣대 때문에 ‘논문표절’이나 ‘중복게재’ 등이 드러나 학문적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하자사항 가운데 예나 제나 가장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단연 위장전입 문제다. 이번에는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와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가 이 그물에 걸렸다.

이에 앞서 최근 청문회를 통과한 김준규 검찰총장, 낙마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그보다 앞서 땅을 사랑했다는 ‘명언’을 남긴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도 위장전입 전력자였다.

이 밖에 한승수 총리,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현인택 통일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김병국 청와대 전 외교안보수석 등도 언론 등에서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당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당시만 해도 위장전입은 각료후보자들을 낙마시키는 결정적 ‘폭탄’이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야당인 한나라당이 위장전입을 문제 삼아 공세를 퍼부음으로써 한방에 날아간 총리 후보자만도 장상, 장대환 등 두 명이다.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 사안 하나로 낙마했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 등이 직위를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위장전입 문제는 너무도 빈발하다 보니 이젠 단순 경범죄 사범처럼 별 것 아닌 양 인식돼 가고 있다. 하지만, 위장전입 문제는 그냥 봐주고 넘어갈 사인이 결코 아니다. 위장전입은 명백한 범법행위인데다 과거 정부와의 형평성 때문이다.

최근 김준규 검찰총장이 선선히 자신의 위장전입사실을 고백하고 나선 것도 위장전입을 대충 용인해주는 사회분위기를 감안해서였을 것이다. 그저 청문회 자리에서 가볍게 얻어맞으면 끝날 사안처럼 돼 버린 것이다. 주민등록법에 의하면 주민등록, 위장전입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고 2회 이상 누범자는 가중처벌토록 돼 있다.

저 암울한 권위주의시대에 대학가에는 위장취업(僞裝就業)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위장취업이란, 주로 1970~1980년대에 대학 졸업자나 중퇴자들이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대학생 신분을 속이고 노동현장에 취업하는 것을 일컫는다. 당시 의식 있는 대학생들은 노동자, 농민의 고충을 같이 나누겠다는 일념으로 대기업 취업이나 고시 등 세속적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저 낮을 곳을 향하여’ 나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위장취업 사실이 드러나 공문서위조 또는 변조,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 등으로 실형을 살았다. 신분을 위조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변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대학생들이 노동운동 차원에서 처벌을 감수하고 신분을 위장하고 공장으로 들어갔을 바로 그때, 한편에서는 돈 되는 땅을 사고 자식을 좋은 학교 보내기 위해 역시 위장전입을 했던 것이다.

위장취업을 했던 대학생들을 찬양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그들이 처벌받았듯이 위장전입자들도 비록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에 정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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