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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김지연 기자] “대기업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저도 확신을 못 했어요.”
남양유업의 항소 소식이 들린 지 일주일쯤 지나 박 씨(33)를 만났다. 올해 1월 남양유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0달 만에 ‘승소’ 판결을 받은 주인공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인터뷰를 자청한 그지만, 다른 직장에 몸담고 있으니 이름과 얼굴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남양이 항소하려고 유명 법무법인에, 변호사를 6명이나 선임했더군요. 뭐라고 해야 할지….” 그는 상황이 버거운 듯 답답한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작년 7월, 박 씨(33)는 열 달간 운영했던 남양유업 대리점을 접었다. 단 10개월인데, 무려 2억 원의 빚이 쌓였다.

대리점은 2011년 10월 경기도 용인 지역에 열었다. 첫 달부터 물량이 심각하게 많이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밀어내기’의 시작이었다. “6개월도 못돼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나는 하루에 150만 원어치 밖에 못 파는데 매일 300만 원어치가 들어와요. 그것도 매일매일. 도저히 팔 수가 없어요.”

할인행사에 1+1 덤 행사도 했다. 그래도 물량은 계속 남아돌아 손해가 쌓여만 갔다. 자신과 아내 앞으로까지 대출을 냈지만 이중삼중 빚이 늘어만 갔다. 빨리 손 떼는 게 능사다 싶었다.

권리금 1억 2000만 원에 들어왔는데 3000만 원 받고 대리점을 넘겼다. 큰돈인 줄 알지만 다 포기했다. 그런데 남양유업은 보증보험 7000만 원 중 6000여만 원을 말 한마디 없이 빼 갔다.

돈을 제때 갚지 못한 박 씨는 졸지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10년 사업 경력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카드도 정지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우리 아기가 태어났는데 생계가 막막했어요. 상황이 너무 안 좋으니 이혼 얘기가 나올 정도였죠.”

들은 체 만 체 무시하는 회사와 금전 정리는 도무지 이뤄지지 않았다. 두 달 후인 9월 무렵, 박 씨는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소송할 마음을 먹었다.

◆변호사 없이 혼자 전자소송 진행

이달 초 박 씨가 승소한 결과 받을 수 있는 배상금은 2086만 원. 열 달간 계속 밀어내기를 당했지만 마지막 1달 치만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을 걸었다.

“물량 주문을 주먹구구식으로 적어놓은 걸로 소송을 했어요. 그게 7월 한 달 자료. 그 이전 달은 기록조차 없어요. 도대체 얼마나 많이 밀려오는지 자료조차 남기지 못했죠.”

남양유업의 전산발주 프로그램인 ‘팜스21’은 대리점주가 최초 주문한 기록을 아예 지워버리도록 설계된 사실이 알려져 올해 7월에서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박 씨는 변호사도 선임하지 못했다. 혼자서 전자소송을 했다. “제가 법을 아는 것도 아니고… 사실 대기업을 상대로 이길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하지만 너무 억울해서.”

작년 7월 대리점을 접은 후 회사와 티격태격하며 승강이를 벌였다. 회사는 ‘소송하지 말라’면서 800만 원은 돌려주겠다고 했다. 현금담보보증 500만 원과 박 씨가 가입금했던 300만 원. 원래 박 씨가 받을 돈이건만, 소송 걸면 그것조차 못 받을 거라고 했다. 회사는 크레이트(배달용 플라스틱 사각박스) 비용으로 500만 원, 냉장설비 80만 원을 제하겠다고 했다. ‘밀어내기’로 인한 피해 인정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남양이 저를 하찮고 우습게 봤죠. 네가 할 수 있으면 끝까지 해보라는 식. 그런데 승소 판결이 나오니까, 이제는 전액 손해배상이 판례로 남을까봐 걱정하는 것 같아요.”

재판부가 인정한 2086만 원은 밀어내기 피해 1200만 원, 현금담보보증 500만 원과 가입금했던 300만 원을 계산해 나온 금액이다. 박 씨에 따르면 실제로 한 달간 밀어내기를 당한 금액은 최소 2000만 원 정도. 일부 제품은 슈퍼 등에 내다 팔았기 때문에 1200만 원을 청구했다.

“밀어내기를 감당 못해서 입금을 제대로 못하니까 납품처 중 롯데마트를 가져가 버렸어요. 그럼 그만큼 물량을 줄여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매달 롯데마트 분량(1달 2000만 원가량)이 그대로 밀려왔어요.”

올 1월 박 씨가 소송장을 제출한 후, 시기가 맞아떨어진 것처럼 남양유업 사태가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했다. 5월에는 급기야 ‘욕설 파문’이 터지며 사회 최고의 이슈로 떠올랐다.

“주변에서도 운이 좋았다고 말해요, 저도 알아요. 사회 이슈가 아니었다면 저는 남양에 100% 지고 말았을 거예요.”

◆“내 꿈은 아내가 편하게 아기 키우는 것”

지금도 박 씨는 채무에 시달리고 있다. 갚아야 할 돈이 많다. 그런데 남양유업이 항소를 했으니, 변호사비도 나가야 하고 그야말로 이중고 삼중고다.

“변호사 선임 여건도 안되는 상태라, 도와주시는 분이 있으면 좋겠지만 정 안되면 혼자라도 진행하려고요. 공부를 더 해서라도 싸워야 할 것 같고.”

박 씨는 소송하기 전부터나 지금까지도 남양이 사과나 피해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 온 일이 없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대기업을 상대로 개인이 이길 수 없을 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계속 싸우면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저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들었으면 좋겠어요. 남양유업 대표가 국민한테만 죄송하다고 하지 말고 정말 피해자한테 와서 ‘죄송합니다’ 그 말 한마디만….”

24살 때부터 일해서 벌었던 돈을 10개월 만에 다 까먹었다. 큰 보상이 아니라, 그냥 손해 입은 부분만 보상해 주면 좋겠다고 박 씨는 말했다.

계속 소송을 하려는 이유는, 앞에서만 사과하고 뒤에서 이런 식으로 하는 게 너무 싫어서라고 설명했다. 2086만 원조차 포기하더라도 끝까지 담담히 가볼 생각이다. 직장 다니며 혼자 소송하느라 피해대리점협의회와는 최근에야 연락을 하게 됐다. 자신보다 더 긴 시간 고생하고 손해를 입은 피해자협의회 회원들이 잘되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제 꿈이 아내 회사 안 보내고 아기 편하게 키울 수 있게 해 주는 거였어요. 남양대리점이 이렇게 심할 줄 몰랐죠. 10개월간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지난 일이지만 아직 고통은 남아 있다.

“아직 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아내도 절 믿어주고요.” 33살의 박 씨가 다시 희망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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