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순자 광주 북구 오치동

홀로 7남매 키워내신 시어머니
죽을 고비 넘기며 생계 꾸려내

 
함께 호박죽을 맛있게 먹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머님이 우리 곁을 떠나가신 지 벌써 2년이 다 됐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어머님은 줄줄이 사탕처럼 7남매가 있는 가운데 큰아들을 군대 보내 놓고, 아버님과의 청천벽력 같은 이별을 맞이해야만 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이 혼자 되신 어머님, 시골과 섬으로 돌아다니며 그릇 숟가락 야채 생필품 장사를 하셨다. 어느 때는 남자 아닌 남자로 변신,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기며 바다 갯벌을 헤쳐 짱뚱어와 게를 잡아 팔아서 꿋꿋하게 생계를 꾸리고, 자녀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셨던 장한 어머님상을 받으셨던 당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연세가 칠순도 안 되어 치매라는 병명을 받자, 모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난 큰며느리로서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 했고 살다 보니 정이 들었는지 남편보다 어머님과 함께 자는 일이 많았다. 그때는 치매라는 병의 심각성도 몰랐다. 치매가 나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형제들과의 논쟁이 오갔다. “모셔라” “말아라” 어머님께선 요양원에 안 가시려고 승강이를 벌이던 그때 그 순간들….

가을의 문턱에서 문득 애처롭게 다가온다. 병실에서 4년 남짓 계시다가 가시기 전 3일은 집에 오셔서 자녀들을 모두 보시고 편히 잠자듯 가셨다. 그때는 “이만하면 잘한 거지” 스스로 으쓱하며 지냈는데….

‘효문화캠페인’의 글을 보면서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참회의 눈물이 솟구쳐 올라 한참을 울었다. 세월이 지나 어머님을 떠나 보낸 지 10월 말이면 딱 2년. 화장대 위에 영정사진이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고 계시는데…. 잘못하고 못해 드린 것만 생각이 나 부끄럽고 죄송하기 그지없다. 왜 그땐 진정으로 따뜻한 마음 전해주지 못했는지, 진정 따뜻한 웃음 지어주지 못했는지 못내 아쉬운 마음뿐. 이제라도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진심 어린 내 마음을 전해볼까 싶어 살며시 펜을 쥐어본다. 큰며느리로서 부족하고, 어머님을 뿌듯하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멍에가 되어 가슴 한구석을 나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일까. 마음을 열고 글을 쓰다 보니 체한 것이 확 내려가는 느낌이다. 이 글을 통해 멀리 있는 형제들에게도 어머님을 잘 모시지 못한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어머님의 공덕인지 모두 처해진 환경 탓하지 않고 모두 잘살고 있음에 감사드리며 좋은 모습으로 만나길 기원해본다.

7남매를 두고, 두 번이나 뇌졸중을 겪으시며 팔순을 넘기신 친청엄마, 시어머님께 못다 한 정을 다 해보려고 달려가지만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받고 온다.

두 분의 자식들을 향한 뜨거운 헌신, 희생 그리고 사랑! 조금이나마 본받고 싶어 두 분의 삶을 이 순간 새삼 떠올려본다.

멀리 있어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매일 전화 통화로 부모 마음을 보살펴주시는 형부와 언니처럼, 효란 따뜻한 전화 통화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을 다한 효사랑!

부모 공경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 했으니 나와 자손이 복 받기 위해서 꼭 해야 할 덕목인 거 같다.

어머니, 그냥 그대로 우리 곁에 있어만 주세요. 당신이 있어 정말 든든해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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