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은 비단 소방 당국의 홍보 문구만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각자 처신에 조심을 하자는 뜻도 되는데, 국가·사회에 영향력이 큰 정치계에서 신조로 삼을 만한 표어다. 지난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인 여당 후보에게 108만표 차이로 크게 패배한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23일 ‘박 대통령의 결단을 엄중히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국가정보원, 경찰은 물론 군과 보훈처까지 대선에 개입하고 불법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며 현 대통령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문 의원은 대선패배가 결정된 작년 12월 19일, 민주당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패배를 인정한다. 박 당선인이 국민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하길 기대한다. 나라를 잘 이끌어 주시길 부탁한다”고 당부까지 했는데, 1년이 채 되지 않아 대선 불복 수준에 가까운 성명을 낸 것이다. 이에 동조해 민주당에서는 선거 불복이 아니라하면서도 “국가기관의 대선 불법 개입 사건은 전 정권 책임이라 할지라도 이에 대한 수사방해와 외압은 현 정권 책임”이라며 정치적 공세의 표적지를 박 대통령에게 겨냥하고 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승리하고, 축복 속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지도 어언 8개월이 됐다. 국정지지도 60%를 얻으면서 국정을 수행해 나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야당 측의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정치권과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또한 청와대 관계자마저 “무대응이 우리의 대응”이라며 현 정국 대치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고 오직 침묵 모드로 일관하고 있는 중이다.

가뜩이나 민생 문제 등 풀어야 할 시급한 현안 과제들이 산적(山積)해 있는 지금, 과거에 갇혀 있는 소모성의 정국은 국민 입장에서도 답답할 뿐이다. 대선이 끝난 마당에 정치권이 행여 불복을 염두에 두고 ‘꺼진 불씨’를 살리려고 한다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백해무익하다. 그렇지만 국가기관이 지난 대선에서 조직적인 개입을 했다면 이는 반(反) 민주주의적 행위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따라서 정통성을 가진 박 대통령은 지펴나고 있는 국정원, 경찰, 국방부 등의 대선 개입 의혹의 불씨에 대해 계속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 진상을 철저히 파헤쳐 다시는 국기 문란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해야 한다. 그것이 무모한 국론분열을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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