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한자는 상호 보완적
높은 문화적 가치 지니고 있어
홍익인간 이념에 기여할 도구


 
10월은 각종 경축일이 집중돼 있는 달이다. 10월 첫날 국군의 날을 시작으로 개천절, 23년 만에 공휴일로 다시 돌아온 한글날, 그리고 10월의 마지막 날은 국가가 지정한 공휴일은 아니지만 종교개혁의 날로 온 세계 기독교인들이 기념하고 있는 날이기도 하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의미 있는 날이다.

특히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맞이했던 지난 9일 한글날을 되새기며 한글이 갖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한글은 세계 약 2900여 종의 언어 가운데 유일하게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1443년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을 창제하고, 1446년(세종 28년)에 훈민정음 28자를 세상에 반포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러한 한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바른 이해를 하고 있을까. 우리의 생각 속에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든 우리 글’이란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하지만 우리가 늘 사용하는 글 가운데는 한글 못지않게 사용되고 중시되어온 한자가 있으니, 이는 엄연한 현실이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와 문화와 함께 숨 쉬어 온 이 한자는 도대체 어느 나라 글이란 말인가. 잠시 일화를 소개하자면, 중국의 문호 임어당 박사와 한국의 초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안호상 박사와의 대화는 잘 알려진 일화다. “왜 당신들은 한자를 만들어 이렇게 힘들게 하냐”는 안호상 박사의 투정 섞인 질문에 “여보시오! 한자는 바로 당신네 글이 아니요”라는 임어당 박사의 면박성 발언은 오늘날까지 관심 있는 사람들 간에는 낯설지 않게 회자되고 있다. 이는 정권마다 한자의 교과 과정 채택 유무를 놓고 고심하던 문교정책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 한자는 고대로부터 약 3000여 년 전까지 중국 대륙을 호령하던 우리 민족인 동이족(東夷族)이 사용하던 차원 높은 글이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의 식자층은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나 외려 우리는 부인하려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동북공정과 같이 주변국들의 역사왜곡이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진 데는 자신들의 역사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는 사실을 왜 모른단 말인가.

567년 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라고 창제의 목적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중국의 정복사관과 일본의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해석으로 지금까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켜 왔음을 이제라도 인정했으면 한다. 즉, ‘듕귁’은 중국의 한자를 의미하기보다는 중앙(한양)과 지방 또는 표준어와 사투리의 문제로 나라가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점을 안타깝게 꼬집는 대목이며, 나아가 음과 훈에 의한 한자사용은 상류층만의 특권이 되므로 ‘정음’이라 하듯이 온 백성이 사용할 수 있는 바른 소리의 소리글자인 한글을 창제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자는 뜻글자인 표의문자(表意文字)요 한글은 소리글자인 표음문자(表音文字)라는 사실에도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결국 한자와 한글은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하며 글자의 뜻과 소리를 통해 모두가 말하고 기록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데 훈민정음 창제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음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잠시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각 사람에겐 이름이 있고, 나아가 모든 만물까지 그러하며, 그 이름엔 제각각 고유의 뜻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름값을 하라’는 옛 말도 있다. 그렇듯이 각각의 이름엔 그 이름이 지닌 뜻이 담긴 미래가 약속돼 있다. 즉, 이름이 가진 뜻은 뜻을 가진 한자로 가능하며, 한글은 뜻이 아닌 소리를 표현해 줄 뿐이다(이- 李․耳․異․理․二…). 소리글자만으론 뜻을 구분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어는 한글이다 또는 한자다 하는 소모전은 이제 끝내야 한다. 지금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자의 채택 유무를 놓고 갑론을박해 왔지만 뾰족한 답을 얻지 못하고 혼용해 올 수 밖에 없었던 엄연한 현실이 바로 이를 잘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자와 한글은 우리 민족이 함께 보존하고 사용하고 알려야 하는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 자산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 지구촌에는 언어는 있어도 글이 없는 민족이 무수히 많다. 뜻과 소리를 함께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가진 민족,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자랑이다. 이는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민족의 이념과 같이 우리만이 아닌 온 세상을 이롭게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도구로 삼으라는 역사적 명령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옥스퍼드가(家) 또는 출신의 문호들이 한결같이 인류의 태동에서부터 변천사를 알기 위해선 반드시 인류의 어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듯이, 바로 우리 민족의 어원(사투리)을 통해 인류의 변천사를 더듬어 갈 수 있음을 오늘날 많은 역사학자들이 제기하고 있다.

흔히 ‘문화(文化)’를 말한다. 이 문화란 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과 지혜는 바로 우리 민족에게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문화융성강국은 구호와 형식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 문화융성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또 이룰 수 있는 재료와 이유와 방법을 제대로 인식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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