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서울 마포구지회 박승모 지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서울 마포구지회 박승모 지회장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지회장이라는 게 감투가 아니라 심부름꾼 노릇을 하는 거예요. 허허.”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6.25참전유공자회 마포구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승모(80) 지회장은 나이에 비해 정정해 보였다. 그는 유공자회 회원 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6.25 때 학도병으로 입대했으니 군번만큼은 다른 ‘인생 선배’에게 밀리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좀더 젊고 건강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6.25 당시 상황을 풀어내는 박 회장의 목소리엔 힘이 들어갔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에 다닐 때 전쟁을 만났다. 그때도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충돌하던 상황이어서 실제 전쟁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6월 25일 아침 8시였고, 비가 왔어요. 일요일이라 집에 있었는데, 라디오에선 38선에서 교전이 발생했다는 방송이 나왔고, 군인에겐 귀대 조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죠. 당시만 해도 ‘또 38선 충돌이네, 며칠 있으면 다시 조용해지겠지’라고 생각했지요”

이날 오전 11시 춘천 시내에 북한군의 포탄이 떨어지자 상황이 급변했다. 38선 부근의 피난민이 밀려 내려왔고, 북한군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피난 대열에 합류했다가 다시 춘천에 돌아온 박 회장은 인민군 치하에서 3개월 동안 숨어 지내다가 그해 9월 29일 학도병으로 입대했다. “이 기회에 인민군을 쳐부수고 통일을 이루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6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돼 신고산, 순천을 넘어 북으로 밀고 올라갔다.

그러다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퇴한 뒤 건강이 나빠졌다. 치료를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을 가던 중 군에 다시 입대하게 된 그는 제주도에 있던 육군 제1훈련소에 입소해 정식으로 군사훈련을 받았다. 육군헌병학교, 육군헌병사령부 근무를 거쳐 56년 7월 만기제대하기까지 그가 군에서 보낸 시간은 5년 6개월이었다.

군 생활 중 맺어진 정전협정은 그의 마음 한편에 아쉬움으로 남았다. 전투는 끝났지만, 전쟁이 끝난 것도 남북통일이 이뤄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후세대를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현재 6.25참전유공자회 회원들은 거의 80세가 넘은 고령자다. 국가로부터 경제적 혜택을 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나라를 위해 싸웠다는 자긍심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6.25참전유공자들이 고생한 것을 후세대가 마음으로 좀 알아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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