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국체육대학 초빙교수

2009년은 한국남자골프에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8월 미국에서 프로, 아마 최고 대회를 잇달아 제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골프를 주도하는 세계 강국. 그 중에서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프로골프 메이저대회 중의 하나인 US PGA 선수권대회를 ‘제주도 사나이’ 양용은이 최강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제패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아마골프 최정상 대회인 US 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 ‘한·중 핑퐁커플’ 안재형-자오즈민 부부의 외아들 안병훈(18)이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1895년에 시작된 US 아마추어챔피언십은 타이거 우즈가 아마추어 시절 3연패를 하고 지난해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19, 이진명)가 우승한 세계 최고 권위의 아마추어 대회다.

미국의 프로·아마 최고 대회를 연달아 제패한 것은 국내 남자골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아시아에서 먼저 미국골프에 진출하며 PGA 우승의 맛을 본 일본조차도 누리지 못한 경사이다.

그동안 한국남자골프는 1935년 연덕춘이 한국인 최초로 프로골퍼자격을 얻은 이후 70여년간 세계무대, 특히 가장 수준이 높은 미국 무대에 여러 차례 도전을 했으나 프로·아마 메이저대회와는 전혀 우승 인연이 없었다.

그동안 성적을 살펴보면 2000년 미 PGA에 본격 진출한 최경주가 2002년 5월 컴팩클래식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인 1호 PGA 대회 우승’의 기록을 세웠으며 이후 2008년 하와이 소니오픈까지 7차례 정상에 올랐다.

한국계 골퍼 앤서니 김은 2008년 AT&T 오픈 등 2승을 거둬 타이거 우즈의 뒤를 이를 젊은 유망주로 떠올랐다. 지난해까지의 이러한 결과들은 미 LPGA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치고 있던 여자골프와 비교해 볼 때 많이 미흡했다.

여자골프는 1988년 구옥희가 스탠더드 레지스터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미 LPGA에서 박세리 24승, 김미현 7승, 박지은 6승, 신지애 5승 등 다승 우승자를 여러 명 배출하고 통산 80승을 올리며 미국, 스웨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강국으로 막강한 위상을 과시했다.

앞으로 남자골프에 큰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여자골프가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1998년 6월 박세리가 LPGA 데뷔 첫해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한국여자골퍼로는 최초로 LPGA 메이저대회 정상에 올랐다.

2달 뒤 박지은이 US 여자아마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이해 프로, 아마 메이저대회 정상을 한국 여자골퍼가 밟았다. 여자골프는 박세리, 박지은이 우승을 차지한 뒤 세계의 시샘을 받으며 미 LPGA의 우승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이번 남자골프에서 양용은과 안병훈이 우승한 것은 11년 전 여자골프가 이루어낸 것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남자골프 프로·아마 메이저 대회에서 일단 정상을 차지한 만큼 앞으로 여자골프와 같이 순탄한 코스를 이어가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남자골프가 여자골프와 같은 호기를 맞고 있기는 하지만 미 PGA의 수준이 LPGA보다 워낙 두텁고 경쟁 또한 치열하기 때문에 마냥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는 것은 꿈에 그칠 수도 있다는 게 골프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세계남자골프는 타이거 우즈가 아직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훌륭한 기량과 실력을 갖춘 무서운 강호들이 우즈조차도 밀어내고 새로운 최고수로 올라서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치열한 격전장이다.

따라서 한국남자골프는 일단 상승세의 기운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양용은, 안병훈 등 정상을 밟은 골퍼들은 일순간 맛본 정상의 거품에 취하지 말아야 하며, 또 묵묵히 음지에서 샷을 가다듬는 골퍼들은 착실히 내실을 다지며 양용은, 안병훈의 뒤를 이어 정상의 진군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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