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人 평화를 말하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3]

▲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년 10월 16일 ~ 2005년 4월 2일).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전에 대한민국을 두 차례(1984년, 1989년) 방문했다. 그는 한반도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교황의 첫 방문 계기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김대중 씨의 구명을 요청하는 서신(친서)을 보내면서 시작된다. 한국천주교와 정부의 요청에 교황은 로마교황청에서만 이뤄지던 전례를 깨고 직접한국을 방문해 순교자 시성식을 가졌다.

◆“시련 이겨낸 한국 역사, 폴란드와 닮아”

1984년 5월 3일, 그는 한국의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식과 순교자 103인 시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방한한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교황은 공항 바닥에 입을 맞추고 우리말로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며 한국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시해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인사말 첫머리에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구절(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을 한국어로 말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마무리 역시 한국어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한반도의 온 가족에, 평화와 우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방한 기간 한국 역사책(번역본)을 읽고 감명을 받고 “혹독한 시련에도 민족의 정통성을 꿋꿋이 지켜온 한국의 역사가 모국 폴란드와 닮았다”는 소감을 밝혀 남다른 애정을 표시했다.

그는 청년시절 전쟁의 참상과 아픔, 고통을 몸소 겪었다. 나치 침략으로 고통받은 그의 조국 폴란드,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한국. 교황은 분단의 나라 한반도의 땅에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너무나도 소중한 국민과 청년들의 귀한 생명을 빼앗고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전쟁의 폭력성에 저항하는 삶을 한평생 살았다.

교황은 한국천주교 일정뿐 아니라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의 시간을 가졌다. 방한 다음날 5월 4일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를 찾아가 “예수님께서 친히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고 격려하면서 한센병 환자들의 치유를 기원했다. 이는 교황의 뜻에 따라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반도 화해 염원한 평화 메시지 전해

5년 뒤 그는 대한민국을 두 번째로 방문한다. 교황은 1989년 10월 5일부터 3일간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한 것이다. 그는 65만여 명이 운집한 여의도 광장에서 남북한의 화해를 바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낭독했다. 전두환 독재정권의 국가폭력으로 죽거나 부상당한 5.18 광주민중항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교황은 북한에 대한 관심도 보였다. 생전에 북한 방문을 소망했던 교황은 천주교 신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방북을 논의하기도 했다.

2000년 초 김 전 대통령은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면 한반도 평화에 대단히 기여할 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큰 축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도 그렇게 된다면 하느님의 기적일 것이라며 곤경에 빠진 북한 주민을 돕고 싶다고 화답했다.

이후 교황청은 평양에 천주교 대주교를 파견하고 북한에 수십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교황청이 교황의 방북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북한 내 선교활동 인정, 성직자 입북 허용 등에 대해 북한 측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교황의 방북 계획은 끝내 무산됐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05년 4월 2일 선종했다. 교황은 27년 가까이 재임한 기간, 전 세계 100여 개국을 순방하며 자유와 평화, 인권을 부르짖으며 소외된 약자와 고통에 신음하는 이웃들의 따뜻한 친구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정치뿐 아니라 세계 다양한 이웃종교 대표지도자들을 만나 화해와 평화를 논의하며 세계평화에 이바지했다.

대한민국과의 인연 또한 인상이 깊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교황이 생전에 염원한 하나님의 기적이 이 땅 한반도에서 일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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