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OECD 31개국 청소년 인구(10~24세) 10만 명 당 자살자수는 2000년 7.7명에서 2010년 6.5명으로 줄었지만,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6.4명에서 9.4명으로 47%나 증가했다. 꼭 통계자료가 아니더라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필자는 진료실에서 자살 징후를 보이는 아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꿈 많고 즐거워야 할 청소년들이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거나 자살 충동을 경험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012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3~19세 청소년 자살 충동 이유로서 성적, 진학(39.2%), 가정불화(16.9%), 경제적 어려움(16.7%), 외로움, 고독(12.5%), 친구 따돌림(7.1%)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하여 청소년들이 우울증에 걸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러한 우울증을 방치하거나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 경우 실제 자살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청소년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 기분장애의 경우 학업 스트레스, 부모와의 갈등, 친구 문제, 이성 문제, 학교 폭력 등 매우 다양한 선행 요인들이 있다.

결국 각종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의 정신과적 질병에 이환된 후 자살을 감행하게 된다. 그밖에 부모님에게 심한 꾸지람을 들은 후 충동적으로 자살을 감행하는 경우도 청소년기에는 꽤 많이 있다. 아직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들은 사춘기여서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기 쉬운데, 부모님들이 조금 더 주의 깊게 봐야 할 징후들이 있다. 갑작스럽게 무모하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슬며시 던지는 것(예: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지요?), 자살 관련 글이나 책을 읽는 것, 인터넷에서 자살 관련 사이트를 찾는 것, 친구들을 갑자기 만나지 않는 것, 친구나 형제자매에게 자신의 아끼는 물건을 주는 것,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표현하는 것(예: 이 세상은 온통 위선과 악으로 가득 차 있어), 갑자기 말수가 확 줄어들거나 가족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 등이다.

청소년 자녀가 고통스러운 순간을 이겨내는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먼저 아이가 힘든 마음을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함께 의논할 수 있음을 일러줘야 한다. 즉 남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 결코 자신이 부족하거나 자존심 상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준다. 자살 등의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방법이 아니라 다른 해결방법을 찾게끔 도와주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의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결국 끝이 난다는 사실도 일깨워주자. 다소 의도적이라도 아이가 낙관주의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지금은 죽을 만큼 힘이 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지고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 예측을 심어준다. 가족의 존재를 강조하고 확인시켜 주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화법이 중요하다. 어떤 방법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대화를 시도하고 나서는 자녀의 말을 ‘듣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다 털어놓게끔 부모의 적극적인 듣기 자세가 중요하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중간에 공감과 이해의 표시를 해 주고, 아이의 마음도 있는 그대로 읽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때 아이를 절대로 비난하거나 혹은 왜 힘드냐는 식의 다그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부모인 내가 ‘아이의 힘든 마음을 제대로 몰랐고,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우리 부모가 진심으로 나의 심리적 어려움에 관심을 갖고 도와주려고 함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 순간 아이와 부모 간의 신뢰와 협력적 관계가 생기게 된다. 학교에서도 자살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직접 상담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전문기관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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