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던진 ‘개각’ 돌맹이로 인해 여의도 정가에 파장이 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일 단행한 개각으로 여야는 득실 따지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총리로 내정된 것은 이 대통령이 강조해 온 ‘화합과 통합’을 실현하려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한때 야권에서 대통령후보로 강력하게 지목되던 정 총리 내정자를 끌어안음으로써 ‘국민통합’을 실현하는 동시에 ‘엘리트 경제학자’ 출신인 정 총리 내정자를 통해 ‘중도 실용’ 정책을 완성하려는 청와대의 구상을 엿볼 수 있다.

 

◆‘화합과 통합’의 효과는

이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위해 충남 공주 출신인 정 총리 내정자를 선택했다. 유력했던 자유선진당의 심대평 전 대표의 ‘총리카드’가 무산됨으로 선택한 카드 치고는 ‘파격적’이라는 것이 정가의 분위기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고 ‘4대강 사업’을 포함한 이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해 왔던 정 총리 내정자의 이력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을 지니는 인물에게 총리직을 맡겨 ‘탕평인사’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통합정치’를 위한 단단한 포석을 깔아 정가에 이는 바람을 잠재우고 정치권의 상생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종시’와 ‘정운찬’… 충청 민심의 향방

총리로 내정된 지 몇시간 만에 정 총리 내정자는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원안 추진은 효율적인 방안이 아니라고 본다”면서 ‘세종시’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인 ‘4대강 운하’에 대해 “대운하를 만들 돈이 있으면 학생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더 주는 게 낫다”고 비판했던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인 것이다.

정 총리 내정자의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겠다는 발언이 정치쟁점으로 급부상하면서 세종시를 둘러싼 여야의 수 싸움도 격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심대평 대표의 탈당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자유선진당은 “경제적 효용성만으로 제단할 수 없는 세종시 문제에 대한 정 총리 내정자의 발언은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이 있었거나, 없었다면 매우 경박한 처사”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충청권 출신 민주당 의원들도 “고향(세종시)을 팔아 총리직을 구한 정 총리 내정자는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퇴진을 공론화 하겠다고 밝혔다.

급기야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의원연찬회 마지막날 “세종시법을 원안대로 통과시키는 기본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두 번의 국회를 거치고도 아직 확정되지 못한 ‘세종시’가 정 총리 내정자에 의해서 어떻게 추진될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중도실용’ 대통령과의 정책 조율은?

정 총리 내정자를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경제학자인 그의 소신이 이명박 정부와 얼마나 조율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평소 자신을 ‘케인지언’이라고 명명하며 시장에 대한 개입과 규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큰 정부’ 형태를 선호했던 정 총리 내정자는 규제를 억제해 시장에 의한 자율적인 기능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경제정책을 펼치는 이명박 정부와의 마찰이 불가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 총리 내정자를 어렵게 모셨다”면서 “그러나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 철학에 대해 공감했기 때문에 총리직을 수락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학자로서의 소신과 행정부의 수장으로서의 추진력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정치권의 평가

이명박 대통령의 특사로 유럽을 다녀온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정운찬 총리 내정자는 훌륭한 분으로서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해 친이계를 포함한 여당에서는 낙점을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나라당 윤상변 대변인이 “국민통합형 파워내각이 구성됐다”며 “화합·실용·안정 이 세 가지를 얻은 개각으로 평가한다”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정 총리 내정자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 일색이다.

민주당은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주장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확연하게 다른 노선의 정운찬 전 총장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아무리 봐도 불균형, 부조화”라며 “테니스를 즐기신 대통령과 야구광으로 알려진 총장이 테니스 코트에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를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자유선진당은 ‘세종시’를 염두에 두면서 “우리 자유선진당을 짓밟고 헤집으면서 단행한 개각치고는 매우 미흡하고 아쉽다”면서 “억지 충청 총리에 전리품 장관들”이라고 일축해 정 총리를 포함한 개각으로 기용된 장관 전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각각 “국정쇄신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50점짜리 개각” “정운찬, 논에 장미를 옮겨 심은 격”이라며 비난했다.

 

◆차기 대권의 잠룡이 될 가능성은?

정 총리 내정자가 총리직을 바탕으로 차기 대권에서 ‘다크호스’ 또는 유력한 후보로 등장할 수 있을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역대 총리들이 총리를 거쳐 대선 후보로 부상했던 전례를 통해 그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문민정부 당시 이수성, 이홍구, 이회창 전 총리와 참여정부 당시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등이 총리직을 물러난 뒤 대선에서 유력한 후보로 등장했었지만 현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만이 대선후보가 된 것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대선레이스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정 총리가 충청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충청 표심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선후보가 되는 것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시의 원안추진’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정 총리 내정자에게 충청권 민심이 얼마나 지지를 보내줄지가 관건이지만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와 대립각을 세울 것이라는 예측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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