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인 유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도무지 가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어느새 가고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에 실려 가을이 왔다. 사실 귀뚜라미 소리를 인식한 것은 얼마 전이다.

최근 수업 시간에 나희덕 시인의 시(詩) ‘귀뚜라미’를 접한 뒤니 말이다. 귀뚜라미 소리가 홀연히 찾아온 가을을 일깨워 주듯이, 시원한 바람이 하도 반가워서 내다본 창에서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이 만든 형상이 문득 어떤 이의 부재(不在)를 느끼게 한다. 엄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11살이란 나이에 엄마를 암이란 병마(病魔)에게 빼앗겼다. 죽음이란 의미도 잘 이해하지 못하던 때였다. 다들 경험하는 일이라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경험한 탓에 내게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었다. 그때부터 작은 손으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유일한 여자인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을 챙겨야 했고, 다리가 불편하신 아버지께 저녁을 차려 드려야 했고, 내 생활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했다. 난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사춘기가 되면서 내 마음속에는 사소한 불만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왜 이런 걸 다 해야 하는 거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눈물을 봤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 술에 취하셔서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우리를 붙잡고 우셨다.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에는 절망과 슬픔, 아내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사실 제일 힘든 사람은 아버지였는데 나는 왜 그걸 몰랐는지……. 그동안 효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또 몰래 우는 오빠를 보면서, 엄마의 정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하고 자라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 나는 다짐했다.

아버지께는 멋있는 딸이, 오빠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동생에게는 엄마 같은 누나가 되기로!

가끔 자신의 삶이 유독 비참하고 초라해서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행복이 가도 가도 잡을 수 없는 저 산 너머에 있는 무지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천지를 뒤흔들 듯이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는 귀뚜라미는 때가 되면 비로소 제 가치를 드러내게 된다. 나 역시 그렇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을 반드시 알기에 오늘의 이 어려움도 견딜 만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올려다본 가을하늘에 엄마가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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