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객원논설위원

 
미디어법 강행 처리로 문 닫았던 국회가 정상화되는 듯 보였으나 역시나 또 판이 깨졌다.

의원직 사퇴서까지 제출했던 민주당이 전격 등원을 결정했다고 해서 이제 뭔가 국회가 국민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려나 생각했었다.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지난 1일 정기국회가 시작하던 날 국회의장의 개회연설을 듣다 말고 민주당 의원들은 미디어법 원천무효의 피켓을 들고 집단 퇴장했다. 아마 이 지구 상 어디에도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품격을 잃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는 국회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선진국 그룹에서는 없을 것 같다. 국회의원들 스스로 신성한 의정단상이니 뭐니 하면서, 역시 그렇게 말하는 국회의원 스스로 국회를 비하하는 행위를 저질렀다.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창피스럽게도 국회의 수준이 너무 그에 걸맞지가 않다.
이런 행위에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제발 대국적인 성찰들을 해보면서 국민을 영광스럽게 하는 국회가 돼 주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소수는 승복하지 않고 다수는 힘으로 밀어붙이니까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또 싸움이 생기고 파탄이 난다.

힘도 없는 소수가 다수를 꺾으려는 억지를 부려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 해서 과반의석을 넘게 가진 다수당이 의안을 변칙으로 날치기 처리하는 것은 누가 봐도 졸렬하고 치사하다. 더 창피스럽다.

위급한 국가 안위의 문제도 아니고 국민이 죽고 사는 다급한 민생의 문제도 아닌데 좀 뜸도 들이고 분위기도 잡아가면서 여유롭게 처리하면 안 됐던 것인가.

미디어법은 여론이 다수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야당의 완강한 반대를 무리하게 힘으로 제압하면서까지 강행 처리했다. 무엇에 쫓겨서 인가 이해가 잘 가질 않는다.

그 여파로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루어야 할 민생 관련 법안을 비롯해 국정감사, 내년도 예산안 심의, 행정구역 및 선거구 개편, 개헌 문제까지 산적한 중요한 현안들의 처리가 파행을 겪지 않을까 우려된다. 답답하기만 하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과 국회에 대해 배신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국회다.

국민이 다수당을 만들어 줄 때 다수 힘으로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해서 무엇이든 하라는 절대 권능을 준 것이 아니다. 소수당 의원의 얘기쯤은 무시해도 좋다고 다수당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좋은 것은 소수 의사도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다수당이 교만하면 소수당은 절대로 승복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치이기도 하지만 우리 국회가 경험으로 충분히 입증해 주고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소수나 다수나 여전히 유치한 수준의 의식에 머물고 있다. 더는 욕심일지 모르지만 국회가 국력과 경제력의 외형만큼만이라도 성숙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소수도 지나친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되지만 다수당에는 인내심과 도량이 있는 정치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설사 소수의 발언과 주장이 거슬린다고 해도 “집어치워” “그만 내려와” “끌어내” 하지 말고 입이 말라 더 말하라 해도 못할 때까지 진지하게 경청해 주는 인내심과 도량을 보여줄 수는 없는가.

그러기 전에는 국회에 평화는 없을 것 같다. 국회가 여야 대립과 갈등으로 세월을 보내면 그것은 곧 사회갈등, 지역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일이 되며 국민통합을 요원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국회의원 스스로 너무 잘 아는 일이지 않은가.

국민이 뽑아 국회로 보냈으면 정당, 파당의 이익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여야가 국리민복을 위한 최대공약수를 생산해내는 데 최선을 다해 주어야 한다. 국회를 격투기장으로 만들거나 신성한 의정 단상을 버리고 거리로 뛰쳐나오는 일들이 정말 꼭 반복돼야만 하는 것인가.

제발 국민에게 고통과 스트레스를 안기지 마라. 이번 정기 국회에 꼭 부탁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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