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人 평화를 말하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테레사 수녀(1986년 2월, 인도 캘커타).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12억 명의 천주교인을 이끄는 교황은 천주교뿐 아니라 이웃종교인과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과 영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대표적인 종교지도자다. 로마가톨릭교회(교황청)의 수장이자 세계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교황은 갈등과 분쟁으로 신음하는 지구촌 곳곳에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평화의 메신저요 평화의 사도로 인정받고 있다. 그 가운데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된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년 10월 16일 ~ 2005년 4월 2일)는 종교계뿐 아니라 세계인들도 인정한다.

그는 하드리아노 6세 이래 455년 만의 비(非)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자 역사상 최초의 슬라브계 교황이다. 동시에 20세기 교황들 가운데 최연소로 즉위한 교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약 27년 재임한 그는 사상 세 번째로 오래 재임한 교황이다.

◆요한 바오로 2세, 평화·생명 메시지 전파
평화의 사도로 인정받는 요한 바오로 2세는 살아생전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두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세계평화와 반전을 호소하고, 생명윤리에서도 기독교의 전통적인 도덕관을 제시하며 생명의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그는 종교의 범위를 넘어 세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돼 있다.

특히 종교 간의 문제에는 시종일관 온건한 태도로 일관해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임 기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평화와 종교 간 화해,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쉼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어느 곳이든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가서 평화를 외쳤다.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나라를 방문했다. 그는 역사상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세계지도자이자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모국어인 폴란드어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 크로아티아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세계인과 소통했다.

◆전쟁 겪은 청년 보이티와, 사제의 길 걷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본명은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다. 보이티와는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남부의 마을 바도비체에서 예비역 육군 장교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3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성직자가 되기 전에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형 등 가족 모두를 여의었다.

청년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은 그는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봤다. 사람이 이념, 민족, 국가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후 그는 사제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보이티와는 1942년 크라쿠프 교구장인 아담 스테판 사피에하 추기경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지하 신학교에 입학한다. 보이티와는 사피에하 추기경에 의해 1946년 11월 1일 사제 서품을 받는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청립대학교에 들어간다. 그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에서 드러난 신앙’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신학 전문직 학위를 받으며 지식을 더해간다.

드디어 1948년 여름 폴란드로 돌아온 그는 크라쿠프로부터 15Km 떨어진 외딴 시골마을의 사제로 사역을 시작하며 성직자의 길에 들어선다. 훗날 그 자신이 교황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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