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철재 서울 구로소방서 홍보교육팀장

 
“엄마아~!”

돌멩이로 받쳐놓은 대문을 조심스레 밀치면서 한 발짝 옮기기가 무섭게 “오메, 내 막둥이~!”하며 맨발로 뛰어나와 안아주시던 울 엄마. 순간 당신의 눈가엔 그렁그렁 말간 눈물이 고였을 터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 년에 고작 두어 차례 찾아간 못난 놈이었건만 단 한 번도 서운한 내색을 보이지 않으신 당신의 진짜 속내를 그땐 감히 알아채지 못했을 터이다.

이젠 당신이 태어난 마을이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사자산 자락에 터를 잡고 영면(永眠)해 계신 그리운 어머니, 강막동(姜莫同)!

당신은 언제부터인가 온 가족이 깊이 잠든 이른 새벽녘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일어나 처음 길어온 우물물로 목욕재계를 하고나서 정화수(井華水)를 올려놓고 가족들의 평안을 조왕(竈王)신께 빌고 또 빌었을 터이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하얀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정화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는 모습을 목격한 제게 당신은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보내왔지요.

당신의 그런 모습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저는 한동안 부동자세로 엄숙한 주문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지요. 당신의 조왕신을 향한 주문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어둠을 밝히는 여명이 새벽의 정적을 깨며 서서히 밝아왔을 터이다. 그랬을 터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은 당신의 기도는 자신과 남편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4남매를 향한 한결같은 바람이었을 터이다. 그런 당신의 주문이 조왕신께 닿은 때문일까, 4남매는 큰 병고 한 번 치루지 않고 건강하게 장성해서 당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두 혼례를 거행했을 터이다.

춥고 배고픔에 온 식구가 매달려도 겨우 꽁보리밥으로 연명해 가던 시절…. 가난과 궁핍 속에서 자식들 걱정에 당신의 주문은 언제나 눈물이 함께 했을 터이다. 현실의 막막함 속에서 어쩌면 눈물의 기도만이 당신의 뻥 뚫린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통로였을 터이다.

어느 해 몹시 추웠던 겨울 밤, 밖에서 돌아온 저는 모닥불보다 더 따뜻했던 당신의 품속에 안겨 젖무덤을 만지며 잠을 잤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꽁꽁 언 몸이 스르르 녹아내릴 때, 당신의 둔탁한 손을 어루만지며 참 바보스런 질문을 했을 터이다. “엄마, 엄마 손은 왜 이렇게 딱딱해…?”

누구나 살면서 기도가 필요한 순간이 분명 있을 터이다. 너무 지쳐 육신이 흐느적거리는 순간, 앞이 탁 트여 보이지 않고, 이별의 상실감이 휘몰아칠 때의 기도는 분명 힘에 겨운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동아줄일 터이다.

기도…. 자칫 종교적 의미만을 생각해 낼 수 있겠으나,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비는 마음’이 더 강한 의미일 터이다. 내가 잘되고 가족이 건강하기를, 그리고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비는 마음이 바로 기도일 터이다.

기도의 힘은 정말로 위대하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다는 사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준다는 사실. 그것은 우리의 삶 중에서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터이다.

그 혹독한 추위에도, 힘겨운 노동으로 몸이 천근만근 무거울 지라도 1년 365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화수 앞에서 오직 자식 놈들 잘되게 해 달라며 평생을 조왕신께 기도를 올리신 당신께 울 4남매는 과연 무엇으로 보답해 드리고 있나요?

황금빛 들녘이 보여주는 풍성함 속에서 한가위가 찾아오고,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데 모여 당신이 영면해 있는 산소와 그 주변을 정성스레 보살피며 잠시나마 당신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추억해 낼 터이다.

어머니, 어머니~! 당신의 따뜻한 젖가슴이 오늘따라 더욱 그립습니다.

▲ 어머니 강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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