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한국사회에서 정치와 종교처럼 미묘한 관계도 흔치 않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헌법에 따라 정교분리(政敎分離)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헌법 20조에는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정교분리원칙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까이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내각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급에 대한 인선과정에서 특정종교와 특정교회 편중 시비가 불거졌던 게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을 의미하는 이른바 ‘고소영’ 내각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했었다. 즉, 이 대통령이 기독교신자들을 많이 중용했는데 그 중에서도 소망교회라는 강남의 한 대형교회 출신들이 대거 발탁됐다는 게 비난의 논거였다. 실제로 소망교회 출신이 더러 눈에 띄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친기독교적 행보에 즉각 우리나라 최대 종단인 불교 측의 강력한 반발이 잇달았다. 장로출신 이명박 대통령의 불분명한 태도에 끙끙 앓던 불교계는 경찰이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의 차량을 검문한 것을 계기로 폭발했다.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의 경질을 요구하고 촛불시위를 주도했다. 이처럼 정권과 특정 종교가 각을 세운 일도 있었지만 밀월관계를 가졌던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정치인들과 종교의 관계는 어떨까? 현재 18대 국회의원 299명의 종교별 분포를 조사해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눈에 띈다. 한국사회의 종단별 구성비율과 정치인들의 종교분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2005년 실시한 인구ㆍ주택통계조사의 종교별 인구분포에 따르면 불교신자가 1072만여 명으로 전체의 22.8%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어 861만여 명의 기독교(개신교)와 514만여 명의 천주교가 뒤를 이었다. 다음은 원불교 12만여 명(0.3%), 유교 10만여 명(0.2%), 천도교 4만여 명(0.1%), 증산교 3만여 명(0.07%), 대종교 3766명(0.01%), 기타 종교 16만 3085명(0.35%) 순이다.

그런데 의원들의 종교별 분포도는 이와는 엇갈린다. 중앙SUNDAY가 지난해 9월 18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개신교(40.1%), 천주교(26.8%), 불교(15.7%), 원불교(0.3%) 순으로 나타났다.

또 일반 국민의 무신앙 비율은 46.5%에 이르지만 종교가 없는 의원은 17.4%에 불과했다. 즉, 국회의원이 종교를 믿는 비율이 일반인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다.

이는 각종 선거를 치르며 종교 단체·조직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 일부는 전략적으로 신앙을 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천주교도가 국민종교분포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것은 비록 자신이 등록한 성당이 다르더라도 모두 자기 식구처럼 포용하는 가톨릭 특유의 문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천주교인은 한나라당 고흥길·차명진, 민주당 이미경, 민주노동당 강기갑, 창조한국당 문국현 의원 등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천주교인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때 영세를 받았었다.

불교가 강세인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은 불교 신자의 비율이 21.5%로 전체 평균 15.7%보다 높았다. 전체 불자 의원 47명 중 37명이 한나라당 의원이다. 한나라당으로선 지역 민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불교계의 목소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자유선진당에도 텃밭의 종교 성향이 적잖게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의원 18명 중 이회창 총재를 비롯해 10명이 천주교 신자다. 충남 서산에는 천주교 성지인 해미읍성(신유박해 현장)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태어난 곳도 충남 당진이다.

모태신앙이 아닌 정치인들이 나이 들어 종교를 선택하는 데 선거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이는 대목이다. 이를 보면 현실정치와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이 틀림없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