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임기 마친 후 책임제 타당한가” 갑론을박

금융감독원이 3일과 4일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전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에게 중징계 조치를 내렸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황 회장은 우리은행 재직 당시, 부채담보부증권(CDO)과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투자로 1조 6280억 원에 해당되는 손실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에 당국은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내렸다”고 밝혔다.


◆금감원 “편법으로 무리수 둔 파생상품 투자”

제재심의위는 지난 6월에 조사한 종합검사를 바탕으로 황 회장이 리스크 관리규정을 바꿔가면서 무리하게 파생상품 투자를 진행한 것이 황 회장이 ‘직무정지 제재’를 받는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파생상품인 CDO와 CDS에 15억 8000만 달러를 투자했으나 90%에 해당하는 1조 6200억 원 가량 손해를 봤다. 황 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전체 손실액 1조 6200억 원 중 1조 1800억 원을 잃었다.

금감원은 “황 회장이 2005~2007년 CDO·CDS 상품 투자를 직접 지시하는 등 은행법 54조 관련 법규를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황 회장 대리인인 법무법인 세종은 “당시 예측할 수 없는 금융위기가 손실의 큰 이유였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반박했으나 금감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 회장 측 “좀 더 지켜보겠다”

황 회장은 오는 9일 금융위원회 정례회의가 있는 만큼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최종결과가 번복될 가능성이 낮아 재심의 요청 등 다양한 방법을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황 회장은 정례회의에서 ‘직무정지 상당’으로 징계 수위가 확정되면 4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선임될 수 없다. 그렇게 될 경우 2011년 9월 KB금융지주 회장직 임기가 만료되면 연임과 타 회사 이직이 불가능하다.

KB금융지주사는 황 회장 거취와 관련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KB지주는 “KB금융에 오기 전 업무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황 회장의 임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황 회장이 지난해 KB지주에 취임하면서 KB금융지주 출범 후 처음으로 아시아와 유럽지역에서 해외 기업설명회를 가지는 등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런 시점에서 황 회장의 징계는 이사회 권한이 막강한 KB지주 내에서 KB 입지가 좁아질 수 있어 향후 일을 시행하는 데 추진력이 크게 상실될 가능성도 높다.


◆금융업계 “임기 끝난 후 손실 책임 묻는 것이 아이러니”

이번 금감원 징계 결정에 금융계는 “임기가 끝난 뒤 발생한 투자손실에 투자 책임을 묻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금융위기로 손실액이 커질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는데도 금감원이 황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내린 것이 과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지난해 세계 경제위기가 CDO와 CDS 투자손실의 큰 이유였다”고 강조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황 회장에 대한 중징계로 금융회사 CEO들이 소신 있는 경영활동을 하기가 힘들 것이다”고 우려했다.

황 회장 중징계를 바라보는 학계 입장도 다르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파생상품 시장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았고 감독체계가 미흡하다”며 “결과를 두고 손해가 났다고 해서 담당자를 처벌하는 것은 감독당국 책임을 떠넘기는 것밖에 안 된다”고 전했다.

반면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은행장은 기본적으로 도덕적, 전문가적 책임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문제가 생겼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 금융인 자세다”며 황 회장이 받은 중징계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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