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교리비교 기획을 제공해온 본지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새로운 연재기획 ‘목사님 성경이 궁금해요’를 선보입니다. 본 기획은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교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기획에 선정된 질문들은 그간 독자들이 본지 종교부 기자에게 보내온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각 교단에 공문을 발송해 협조를 구했으며, 성도들의 질문에 답한 목회자들의 답을 게재했습니다.

 
Q18. 계 12, 13, 17장의 7머리와 10뿔 가진 짐승은 누구이며, 이들에게서 손과 이마에 표 받은 자는 누구이며, 심판자와 표한 자와 표 받은 자는 정통인가, 이단인가? (이 일이 실제로 있었다.)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본 질의는 성경을 오해한데서 비롯된 잘못된 질문이다. 왜냐하면 7머리와 10뿔 가진 짐승이 손과 이마에 표를 치는 것으로 성경에 말씀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7머리와 10뿔 짐승에 대해서는 4번째 질의에서 답변하였다.

계 13:16에서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한 자”는 7머리와 10뿔 짐승이 아니다. 이 짐승은 13:11에서 7머리와 10뿔 짐승과 달리 ‘또 다른 짐승’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또 7머리와 10뿔 짐승은 13:1에서 바다에서 올라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표를 받게 한 짐승은 13:11에서 땅에서 올라왔다고 하였다. 따라서 7머리와 10뿔 가진 짐승과 사람들에게 표를 치는 짐승은 다른 짐승이다.

7머리 가운데 죽게 되었다 살아난 짐승에 대해서는 4번째 질의에서 답변하였다. 이는 전 세계를 통치하는 세속 권세를 가진 세력이면서도 동시에 전 세계 교회를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세력으로 설명하였다. 그러기에 17:10, 11에서는 그것이 7머리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면서도 8번째 왕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것은 두 권세를 갖고 있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표를 받게 하는 짐승은 바로 그 일곱 머리 중 한 머리가 열 뿔에 의해 세력을 잃은 이후(17:16)에 땅에서 올라와 역사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안에서 활동하는 사단의 역사를 가리킨다.

이것이 오른 손과 이마에 표를 받게 할 것임을 말하였는데, 오른 손은 사람의 활동, 이마는 인격과 사상을 상징한다. 그중 인격과 사상이 행위를 결정하는 원인이라면, 손은 인격과 사상을 구현하는 결과적 행위이다. 따라서 이는 사단이 교회와 성도들의 정신, 즉 사상을 변질시킬 것을 뜻하고, 그로 인하여 모든 행위의 원인과 목적을 바꾸어 놓을 것을 뜻한다. 즉 교회가 추구하는 사상의 변질과, 교회가 행하는 모든 행사의 원인과 목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매개는 왜곡된 진리를 수단으로 한 세속사상일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 표가 ‘사람의 수’인 ‘육백 육십 육’이라고 밝혀주었기 때문이다(13:18). 하나님의 수가 7인데 반해 6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불완전수이다. 그러므로 이는 말세의 교회들이 사단에 의해 인본주의와 세속주의로 변질되어 갈 것을 뜻한 묵시이다.

따라서 정통이든 이단이든 믿음의 목적이 육신과 이 세상 것에 치중된 것은 모두 이 표를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가늠하는 말씀으로 마 6:31, 32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요한은 요일 2:15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다. 바울도 골 3:2에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들이 세상 것을 추구하고 육신 중심으로 기울어진 것은 무슨 연유인가? 그 정답이 본 질문에 담겨 있다.

[전 예장합동 이근호 목사]

‘실제로 있었다’라는 표현 자체가 의미가 죽은 표현이다. 쉽게 예를 들면, 어느 혼자 사는 노인네 마트에서 집에서 삼계탕 해 먹겠다고 생닭을 하나 샀다고 치다. 약 한 달 뒤 자식들이 우연히 그 노인데 집을 방문해보니 그 노인네가 벌써 심장마비로 죽어있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생닭은 이미 썩어서 냄새가 진동한다. 이 말은 곧 지금 현 시점에서 내가 무엇을 알고 어떤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나의 늙음과 더불어 그 사실과 과거적 사실로 같이 퇴색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인간들만이 활동하게 되면 10년 지식이나 20년 지식이 한결 같이 유용하다고 생각되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십자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되풀이해서 세상의 품고 있는 새로운 죄들을 유발시켜서 주님의 심판의 정당성과 거룩성을 알려주신다.

인간들이 간직하고 싶은 성경 지식이나 구원지식은 기껏 썩어져가는 그 인간의 죄를 감추어주고 변명거리로 전락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그 어느 누구도 십자가 앞에서 잘났다, 의롭다, 정당하다, 잘 살았다, 훌륭했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님의 공로만 높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성도들이 머리에 썼던 면류관을 예수님의 발에 도로 반납하는 장면이 나온다(계 4:10).

참으로 실제로 있는 것은, 실제가 뭔지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는 그 죄악뿐이다. 자신도 변하고 시대도 변하면 그때그때마다 짐승은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주님의 주시 하에 본연의 활동을 벌리게 되어 있다. 짐승은 항상 인간에 대해서 이기도록 하나님께서 조치하시고 거기에 대해서 오로지 성도들만 그 와중에 예수님만의 승리를 의지하는 식으로 그 성도로 하여금 천국에서 자신이 쓴 면류관마저 포기하게 하신다. 이것이 십자가와 더불어 사는 성도의 자기 부인이요 자기 부정이요 자기 포기이다. 따라서 성도는 생을 살면서 마음껏 짐승에게 유린당해야 한다.

성도와 비성도의 차이점이라면 비-성도는 자기를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이나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성도는 이미 예수님께 속한 존재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주되심과 십자가 피 흘리심의 취지를 위하여 일부러 자기 백성을 고난 속에 둔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점이 다르다.

그렇다면 짐승의 정체는 이 와중에서 매일같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실적을 통해서 마치 예수님의 승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유도하는 바로 그 세력이 짐승이다. 마태복음 4장 광야에서 예수님도 동일한 시험을 악마로부터 이미 받은 적이 있다. 따라서 예수님에게 속한 자도 마찬가지로 그 코스를 밟을 수밖에 없다.

짐승으로부터 인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도장 받은 사람 빼놓고 전부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1~22)’

예수님으로부터도 인 받지 못하고 짐승으로부터도 인 받지 않은 중립지역은 전혀 없다. 짐승으로부터 인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능력이 담겨있지 못해서 항상 힘이 센 쪽으로 자기 목숨을 담보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늘 미완성적으로 사는 자들이다. 이들이 짐승의 밥이다. 반면에 성령은 오직 십자가의 완성을 성도 안에 담아둔다. 따라서 짐승은 안다. 누가 성령 받은 자인지를 안다.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행 19:15)’

그래서 성도를 향하여 비-복음적인 안목으로 남은 공격을 하게 된다. 따라서 십자가 복음을 미워하는 교회, 국가, 학교, 가정, 교단, 군대, 직장, 병원, 사업장, 농장, 어장, 광산, 가게 그리고 친목단체들 이 모두가 짐승이 배태해낸 사업장이다. 지금도 세상 모든 처소에서 짐승의 활동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계속 실제로 일어날 것이다.

[한국기독교침례회 조예식 목사]

우선 이단에 대하여 논하기로 한다. 이스라엘의 국교는 유대교였을 것이다. 유대교 안에서 율법을 벗어난 교훈을 선포한 예수를 이단이라 하듯, 장로교라는 교단 안에서 장로교의 교리가 아닌 다른 교훈을 선포 하고 따를 때 이단이다.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여호와 증인, 몰몬교 등 한 성경을 놓고 다른 파당을 만든 자체가 각자 따로 가자는 것 아닌가? 각자의 교단은 교단 안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자꾸 질문에 이단인가! 정통인가를 문제 삼고 있는데 이것부터 문제다.

오직 정통은 죄 없는 예수뿐이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정통으로 안단 말인가? 피조물이 알아가는 것은 창조주의 극히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피로 새롭게 창조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알게 되어 있다.

일곱 머리는 로마교황권 출현 전 로마 제국의 7개의 정부형태를 뜻한다(왕, 집정관, 독재관, 십인 위원회, 군정호민관, 군정황제, 독재적인 황제). 또는 7머리를 신성로마제국으로 이해하기도 한다(구바빌론, 앗수르, 신바빌론, 메데 페르샤, 헬라, 로마, 신성로마). 오늘날 7머리는 완전하게 분산된 예수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모두가 머리가 되기를 원하는 시대이다. 세계적인 목사, 세계적인 교회당과 세계 만민으로부터 추앙 받기 위한 머리들은 종교를 통합해서 통합 종교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안달이다. 겉으로는 평화와 미소를 상징하고 있지만 머리가 되기 위하여 꼼수들을 써가며, 종교의 최고의 권위자가 되기를 원한다.

오늘날은 7머리가 아니라. 7천 아니 7만 머리들이 있다. 모두가 교주가 되고 싶어 하는 시대가 열려가고 있다. ‘주님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이며(엡 4:4, kjv)’ 역사적인 관점에서 열 뿔은 서기 476년 콘스탄틴 로마제국이 힘을 잃을 때 열 뿔이 면류관을 얻지 못하다가 13장에가서 열 뿔이 왕관을 쓰게 된다. 로마제국의 약화로 열 개 분열국가(프랑코, 동코트, 반달, 헤룰리, 알레마니, 수에비, 서코트, 롬바르도, 블루군도, 훈족)가 왕국이 된다.

이들은 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 권력을 갖게 되어 왕권을 회복한다. 교황권이 나와서 일부를 점령함으로 ‘짐승’의 시대가 열린다. 다니엘의 열 뿔과 작은 뿔(단 7:20~21), 두 뿔 가진 수양(단 8:7)등 은 권력을 상징한다. 열은 지상의 완전한 수를 말한다. 로마황제는 지상에서 최고의 권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고의 권력을 소유한 붉은 용은 계시록 13장에서 짐승으로 다시 등장한다. 동일하게 일곱 머리, 열 뿔이 있다. 태양신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종교 체제의 수장이 짐승이다. 그렇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렇게 보겠지만, 벌레(하물며 벌레인 사람은 어떠하며 벌레인 사람의 아들은 어떠하겠는가, 욥 25:6). 같은 인간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사도신경은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으로 말하고 있다.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부인하고 본디오 빌라도로 인하여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말이다. 짐승은 교황권이나 어떤 종교적 지도자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바라보신다면 성경을 들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자라면 ‘짐승’이다. 자신의 욕망과 정치적 권력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얻기를 원하는 사람이 예수이름으로 침례(세례)를 하고 자신의 이마에 가슴에 십자가를 표시한다고 천국 가는 것도 아니며,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만 구원이 이루어진다.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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