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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Thank you for remembering the Tunisian Jasmine Revolution”


▲ 모하메드 알리 나프티 주한 튀니지 대사 ⓒ천지일보(뉴스천지)

2013 스마트세계평화대상 수상자
모하메드 알리 나프티 주한 튀니지 대사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2011년 전 세계는 아랍의 민주화 열풍에 놀랐다. 아무도 아랍 전체에 그토록 빨리 민주화 혁명이 번져갈 줄 몰랐다. 당시 아랍·아프리카 민주화에 도화선이 된 ‘재스민 혁명’이 일어난 나라가 바로 튀니지다.

‘재스민 혁명’은 튀니지의 벤 알리(Zine El-Abidine Ben Ali) 전 대통령의 23년 독재 정권에 반대해 전국적으로 확산된 튀니지의 민중혁명이다. 튀니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이름을 따 서방언론이 명명했다.

시위 발단은 2010년 12월 남동부 지방도시인 시디 부지드 거리에서 무허가 노점상을 하던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ed Bouazizi) 청년의 죽음에서 시작됐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노점상을 하던 26세의 부아지지는 경찰의 단속에 항의해 분신자살을 했다. 언론은 이를 제대로 전하지 않았으나, 이러한 사연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확산되면서 민중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재스민 혁명은 아프리카 및 아랍권에서 쿠데타가 아닌 민중봉기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첫 사례가 됐다. 또한 주변국에도 민중이 독재 정권을 타도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실제 인근 이집트를 비롯해 알제리·예멘·요르단·시리아·이라크·쿠웨이트 등 독재정권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및 아랍국가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 튀니지 재스민 혁명은 2010년 12월 남동부 지방도시 시디 부지드 거리에서 무허가 노점상을 하던 모하메드 부아지지 청년의 죽음에서 시작됐다. 재스민 혁명은 아프리카 및 아랍권에서 쿠데타가 아닌 민중 봉기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첫 사례가 됐다.

◆아랍 민주화의 도화선 ‘재스민 혁명’

지난 6월 2013스마트세계평화포럼조직위원회(공동위원장: 이상면 천지일보 대표·한한국 세계평화 작가)는 아랍 민주화에 기여한 튀니지를 스마트세계평화대상 국가로 선정해 상패를 전달했다. 천지일보사에서 진행된 시상식에 모하메드 알리 나프티 주한 튀니지 대사가 참석했다. 이어 두 공동위원장과 한 시간여의 담소가 이어졌다. 화제는 자연스레 수상 배경이 된 재스민 혁명과 튀니지의 역사 문화로 이어졌다.

나프티 대사는 “재스민 혁명을 기억해줘 고맙다”는 말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벌써 2년이 지나 ‘재스민 혁명’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는 지금, 재스민 혁명의 역사적 가치를 재평가해 준 조직위에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당시 분신한 모하메드 부아지지와 같은 성이라고 밝힌 그는 재스민 혁명 이후 튀니지가 혼란을 겪고 있지만 빠르게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불세출 명장 ‘한니발 장군’의 나라

튀니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불세출의 명장 ‘한니발 장군’이다. 나프티 대사는 자신이 한니발 장군의 후손이라며 “6개월 전 한국에 부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한니발 장군을 기억해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한니발 장군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널리 보급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니발 장군은 2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켜 각지에서 로마군을 격파한 인물이다. ‘카르타고(튀니지의 옛 이름)는 해군의 나라’라는 발상을 뒤집어 용병 4만 명과 코끼리 3000여 마리를 이끌고 피레네 산맥과 한겨울 알프스를 넘었다.

기원전 216년의 칸나에 전투에서는 로마군 8만 명 중 5만 명을 살육했으며, 이는 1916년 솜 전투 이전까지 서양에서 하루에 가장 많은 인원이 전사한 전투로 기록됐다. 한니발은 후세에 ‘전략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전투의 여러 요소를 적절히 배합해 몇 배나 되는 전투력을 끌어낸 천재였다. 리더십도 뛰어났다. 이역만리 적지에서 17년간이나 머무르면서도 대부분 용병인 한니발군은 전선을 이탈하거나 난동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 한니발 장군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는 추측이다. 한니발 장군은 기원전 183년 카르타고 비티니아 왕이 로마군에게 자신을 넘겨주기로 결정했음을 듣고 독약을 마셨다.

▲ 2013 스마트 세계평화대상을 수상한 모하메드 알리 나프티 주한 튀니지 대사(가운데)와 공동위원장 천지일보 이상면 대표(왼쪽)와 한한국 세계평화 작가(오른쪽). ⓒ천지일보(뉴스천지)

◆수교 44주년 “문화교류에 큰 역할 하고파”

“튀니지는 한국과 1969년에 수교를 맺어 올해로 44주년이 됐습니다. 양국 문화교류 활성화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나라 전체가 노천 박물관이라고 불릴 만큼 문화유산이 풍부한 튀니지. 자국을 대표해 한국에 부임한 나프티 대사는 양국의 문화교류가 더 활발해지기를 희망했다. 또한 문화와 역사를 특화한 천지일보가 좋은 파트너가 돼 줄 것을 당부했다.

튀니지((Republic of Tunisia, 수도 튀니스)는 독특한 지형적 위치로 인해 ‘머리는 유럽, 가슴은 튀니지, 발은 아프리카’라고 표현된다. 아프리카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반면, 국토의 절반 가까이는 사하라 사막지대다.

또한 지중해의 푸른 보석으로도 불리는 튀니지는 3000년이란 오랜 세월을 많은 강대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고 가장 근대에 와서는 백년 가까이 프랑스 식민지로 지내다가 독립됐다. 기원전 페르키아인이 세운 카르타고로부터 로마, 비잔틴, 아랍, 오스만투르크까지 튀니지를 거쳐 간 역사유적이 풍부해 연간 700만 명의 관광객이 튀니지를 찾는다. 카르타고의 대표 유적지로 옛 페니키아 항구, 로마시대 공중목욕탕과 극장 등이 유명하다.

나프티 대사를 통해 만난 튀니지는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오랜 몸부림과 희생을 치러온 나라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튀니지의 수많은 문화유산은 역사적 아픔과 희생의 대가다. 그런 아픔 때문인지 “양국 문화 교류와 홍보에 큰 역할을 하고 싶다”는 나프티 대사의 말은 진정성과 함께 동병상련의 느낌마저 전해졌다.

35년간 일제치하를 갓 벗어난 후 이어진 동족상잔으로 60년 째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나라. 오랜 세월 ‘평화’를 갈망한 양국에 속히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길 바라며 짧은 만남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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