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임문식 기자] 페르시아 전쟁은 BC 492년부터 BC 448년까지 페르시아 제국의 그리스 원정으로 발생한 전쟁이다.

페르시아는 당시 오리엔트를 통일하고 발칸 반도 원정에 나선 서아시아의 패권국가였다.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1세는 트라키아 반도에 주둔하던 아테네군 사령관 밀티아데스가 페르시아군의 진격을 막으려 한 것에 분노해 트라키아 공격을 감행했다.

원정은 3차에 걸쳐 이뤄졌다.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북쪽에 위치한 트라키아 원정을 위해 함대를 파견했다. BC 492년 1차 원정에 나선 페르시아 함대는 에게해 북쪽 해역을 따라 진군하다 아토스(Athos) 곶에서 폭풍을 만나 난파했다. 이 과정에서 300척의 전함과 2만 명의 군사를 잃었다는 기록이 있다.

페르시아는 BC 490년 이오니아 반란을 도왔다는 이유로 제2차 그리스 원정에 돌입했다.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대군을 동원한 페르시아군은 에게해를 통과해 에레트리아(Eretria)를 점령한 뒤 아테네 북동쪽 마라톤 평야에 상륙했다. 이른바 ‘마라톤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투에서 아테네는 이웃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의 지원 없이 병력 1만 명과 지원군 1천 명만으로 페르시아 대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다리우스 1세로부터 왕권을 넘겨받은 아들 크세르크세스(Xerxes)는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 BC 480년 3차 원정을 감행했다. 이에 맞서 그리스에선 30개 도시국가가 연합한 동맹군이 결성됐다. 육군 지휘를 맡은 스파르타군은 테르모필레 협로에서 침공을 저지했으나, 내통자로 인해 페르시아 육군에 돌파당했다. 해전에선 페르시아 함대의 공격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아테네가 승리했다. 이른바 ‘살라미스 해전’이다.

페르시아 전쟁은 최초로 동서양 문명이 충돌한 전쟁으로 평가된다. 그리스 원정 실패로 서아시아 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반면 페르시아의 공격을 막아낸 그리스는 전성기에 들어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