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예고

▲ 환벽당 전경 (사진제공: 문화재청)

소쇄원ㆍ식영정과 5백 년 만에 조우
시인묵객 드나든 경관 빼어난 곳
배롱나무 장관 이뤄 ‘자미탄’ 불려
한국문학사 문사 대거 배출한 명소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충과 효’의 고장 광주 북구 충효동에 있는 ‘환벽당’과 그 일원이 최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됐다.

환벽당은 조선 중기 문신인 사촌 김윤제(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무등산 원효계곡에서 흘러나온 아름다운 창계천 옆에 세운 정자다.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有室形) 정자 건축물이다.

정자와 연못을 비롯해 전후좌우로 송림과 죽림, 주변에는 산들이 그림처럼 두르고 있다. ‘환벽’이라는 글자 그대로 모두 푸른빛으로 둘려싸여 청록색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

창계천(紫薇灘)을 사이에 두고 남쪽 무등산에서 북쪽 성산에 이르기까지 산들이 고르게 파노라마 경관을 보여주는 선경을 이루고 있어 자연경관 또한 빼어나다.

또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장관을 이뤄 ‘자미탄(紫薇灘)’이라고도 불렸으며, 자연 풍광이 수려해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명승지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사의 걸출한 불후의 문사들이 배출됐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시문과 가사를 지으며 풍류문화의 극치를 이룬 조선시대 별서원림(別墅園林)으로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樓亭文化)를 보여줘 역사ㆍ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평가됐다.

▲ 환벽당 일원 항공사진으로, 빨간원 안이 환벽당 (사진제공: 문화재청)

환벽당 북쪽으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는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증암천 너머에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이 있으며 환벽당 아래에는 송강과 사촌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釣臺)’ ‘용소(龍沼)’ ‘쌍송(雙松)’이 있어 역사적 가치도 뛰어나다.

또 소쇄공 양산보가 살았던 창암촌을 비롯해 마을 주변으로 식영정(息影亭)과 면앙정(俛仰亭), 송강정(松江亭), 은거를 위한 독수정(獨守亭),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등 10여 개 정자가 있어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지역으로서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손꼽힌다.

일찍이 면앙정 송순(宋純, 1493~1528)은 환벽당과 식영정, 소쇄원을 가리켜 ‘한 동네에 세 군데의 명승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 환벽당이 명승으로 지정되면 소쇄원(명승 제40호), 식영정(명승 제57호)과 더불어 500년 만에 옛 일동삼승(一洞三勝)의 면모를 갖추게 돼 의미가 크다.

환벽당의 초기모습은 소세양(1486~1562)이 지은 <환벽당>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또 삼연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南遊日記(남유일기)>를 통해 그 당시의 원림의 식물상과 조경수종을 짐작할 수 있고, 김성원(1525~1597)의 <서하당유고>에 ‘성산계류탁열도’ 등의 그림이 남아있어 인문․지리학적 가치가 높게 평가됐다.

환벽당에는 시인묵객 등 당대의 일류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임억령, 기대승, 송순, 김인후, 소세양, 정철, 백광훈, 고경명, 권필도, 정홍명, 목장흠, 이은상, 이하곤, 이명한, 김창흡, 조상건, 양경지, 정민하, 서봉령 등의 시가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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