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아

나는 2남 1녀 중 차녀. 둘째라는 소리다.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님에 대한 애정은 찾아보기 힘든 아이였다.
떨어져 살기도 했었고 조부모님 손에 자랐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2012년은 ‘부모님’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된 해이다.
아빠의 사고였다.

그날은 여름 치고 선선하지만 봄이라기엔 조금 더운 날이었다. 아침 8시 중국어 특강을 들으러 가던 내 발길을 돌린 언니의 전화. 아침 9시 40분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꼬박 달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 피 비린내와 약품 냄새에 정신이 혼미했다. 멀지 않은 시야에 아빠의 모습이 들어왔고 어느 것 하나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눈물로 얼룩진 검붉은 모습의 아빠. 응급실에서 생사의 고비를 왔다갔다 하며 수술실로 가기까지,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갈 때까지 기억나는 게 하나 없다. 직장생활을 하는 언니. 고등학생인 남동생. 생계를 이끌어 가야 하는 엄마. 연세 지긋한 할머니. 누가 봐도 병간호는 내 몫이었다.

아빠의 사고보다도 내게는 ‘병간호’라는 생소한 어떤 느낌 때문이었을까.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은 나는 싫으나 좋으나 3달 동안 병원에서 아빠와 함께해야만 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아빠가 살아있음에 감사해.”
3개월의 병원생활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닫혀있고 얼어있던 내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그동안의 불효와 반항은 그리움과 사랑을 갈구한 까닭이지 않았을까 싶다.
건강히 퇴원하고 상태도 많이 호전된 아빠는 지금도 나를 보면 미안하다고 말한다.
힘든 시기 굳건히 버텨준 엄마는 지금도 나를 보면 고맙다고 말한다.
그게 부모님 마음이고 사랑이지.
너무 늦게 알아버린 딸이어서 미안합니다.
한없는 사랑 베풀어주심 고맙습니다.
그리고 마음 간절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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