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행동이 느린 자녀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속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밥을 천천히 먹는 것은 그나마 봐줄 만하다. 아침에 등교 준비를 느리게 하는 아이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잔소리가 한 보따리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엄마가 폭발한다. 아이들은 도대체 왜 행동이 느릴까?

가장 먼저 원인적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기질적으로 느린 성격과 행동 양식을 타고 났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 대개 어릴 적부터 느린 모습을 계속적으로 보여 왔을 것이다. 아이의 얼굴들이 모두 제 각각이듯이 타고난 기질적 성격 역시 각양각색이다. 어떤 아이는 매사에 민첩하여 행동이 빠른 반면에 어떤 아이는 느긋한 마음가짐에 행동이 느리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내성적이고 꼼꼼한 성격 탓이다. 내성적인 아이는 일반적으로 활동의 반경과 양이 적다. 따라서 외향적인 아이에 비해서 행동이 느려 보일 수 있다. 또한 꼼꼼한 성격의 아이는 매사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므로 자연스럽게 행동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이의 성격이 연약하고 의존성이 높아서 누군가 일을 대신 해주기 바라는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아이가 행동을 일부러 천천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남이 도와주기를 기다리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엄마가 와서 자신의 일을 대신 해 주기 때문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편하게 일을 처리하는 셈이 될 수 있다.

그밖에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일이 싫어서 일부러 늦장피우고 고집부리거나 단순히 게으른 아이도 느린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아이의 느린 행동을 어떻게 해야 고쳐줄 수 있을까? 가장 우선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부모의 마음가짐이다. 만약 아이가 기질적으로 느리게 태어났다면, 이것은 사실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아이를 다그치기보다는 오히려 도와주는 입장을 취하면서 아이의 행동을 조금 더 빠르게 할 수 있게끔 요령을 가르치고 훈련을 시켜야 한다. 즉 부모는 아이의 성격을 바꾸려고 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이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아이가 실수를 잘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자신감을 갖게끔 해 주자. 만일 아이 스스로 자신이 실수할까봐 요모조모 꼼꼼히 따져서 행동이 느려지는 경우 “너는 실수를 잘 하지 않으니 자신 있게 행동해도 돼.”라는 식의 격려와 안심시키는 말을 해 주면 된다.

의존적인 아이의 경우 부모는 답답하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완성할 수 있게끔 끝까지 기다리자. 혹시 아이가 엄마의 도움을 애원하면, 그 즉시 도와주지 말고 다시 한 번 스스로 해볼 것을 권유한다. 그런 다음에 도와주더라도 전부가 아닌 일부를 도와주면서 아이 스스로 마무리를 짓게끔 한다.

만일 아이가 게으름을 피우면서 행동을 느릿느릿 한다면, 부모의 엄격한 훈육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이와 같이 부모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원인의 파악이고, 그 다음에는 원인별 맞춤 대응이다. 아이에게 궁합을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보다는 부모인 내가 먼저 아이에게 맞추는 노력을 한다면, 부모-자녀 간의 악화된 관계는 점차 개선될 것이다.

자신의 성격에 대한 세심한 성찰도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와 어느 때 또는 어떠한 상황에서 궁합이 맞지 않는지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관찰하여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주변의 부모들에게 육아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육아 서적이나 전문가를 찾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민감하고 수용적인 반응 태도다. 또한 겉으로 드러난 아이의 행동 이면에 숨어 있는 내면적 심리를 파악하고자 애를 쓴다. 아이의 생김새가 모두 틀리듯 타고 난 기질도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가져야 한다. 조급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버리고서 궁극적으로는 잘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서 긍정적으로 아이를 대하며 문제를 하나하나 교정해 나간다면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던 궁합이 어느새 맞는 궁합으로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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